[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크리스토프 폴만 “공교육 수준 탁월… ‘학원’ 우리에겐 없는 개념”

입력 2013-02-03 17:39


크리스토프 폴만(Christoph Pollmann·44) 독일학술교류처 서울사무소 대표는 독일 교육을 소개하는 인터뷰 내내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직업교육에 관해 말하던 도중 휘파람을 불며 독일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했다. 독일학술교류처는 전 세계 65곳에 사무소를 두고 장학생을 선발해 독일 대학으로 보내는 독일 정부기관이다. 지금까지 전 세계 28만명이 이곳을 거쳐 독일에서 공부했다. 서울사무소는 장·단기 유학생을 해마다 20여명 선발해 지원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대학,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폴만 대표는 지난해 8월 서울사무소 대표에 취임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16일 서울 한남동 독일학술교류처 서울사무소에서 이뤄졌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비가 한 푼도 안 든다는 걸 한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독일 사람들은 교육에 돈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각 주 정부가 질 좋은, 완벽한 교육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이건 아주 긴 역사를 가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그 사고를 바꾸긴 힘들 것이다.”

-긴 역사라면, 언제부터 무상교육이 실시된 건가.

“우리는 (영국에 비해) 산업혁명이 늦었다. 정부 주도로 산업화를 추진한 건 18세기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 통일 이후였다. 그 전에는 주로 상층계급만 종교시설 등에서 교육을 받았다. 뒤늦게 산업화를 따라가려면 평민도 교육을 시켜야 했다.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공교육이 강화됐고, 교육받은 인력이 산업화에 투입됐다. 그 결과 얻은 경쟁력은 엄청났다. 그 뒤로도 공교육은 독일의 경제적 성공의 기둥 역할을 해왔다.”

-경제적 성공을 거둔 현 상황에서도 무상 공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독일은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나라는 (면적이) 작고, 인구는 많다. 자원이 별로 없다. 수출을 통해 성공해야 하는 운명이다. ‘수출이 중요하다’는 건 이제 우리 정체성의 일부다. 무상교육은 그런 점에서 필요에 의한 투자다. 인적 자원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독일과 한국이 마치 형제처럼 비슷한 점이다.”

-전 사회가 ‘인적 자원에 투자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건가.

“정치 지도자들이 교육에 투자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정치인의 이러한 인식과 일반인의 공교육에 대한 기대가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남들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으려는 수요가 있을 것 아닌가.

“독일에도 일부지만 사립학교와 사설 교육기관이 있다. 하지만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공교육이 우수하다. 사립학교에 대한 신뢰는 강한 편이 아니다. 김나지움 학생의 약 98%는 주 정부가 운영하는 대학으로의 진학을 원한다. 학원? 우리에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앞으로도 사교육은 발붙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16개 주가 서로 다른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 혼란은 없나. 예컨대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기준이 다르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것 같다.

“대학의 선발 기준은 단 하나다. 고교졸업자격시험인 ‘아비투어’다. 물론 남서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온 학생이 북부의 니더작센 주에서 온 학생에 비해 아비투어 점수가 더 좋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다 입학시킨다. 최하 점수 이상이면 된다.”

-아비투어 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원하는 전공에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건가.

“의대와 치의대, 수의학, 심리학 전공 등은 정원 제한이 있다. 이런 곳을 가려면 아비투어 점수가 좋아야 한다. 따라서 원하는 과를 다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진학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독일 전역에서 10개라도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직업교육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아주 독특한 제도다. 기업이 어린 학생에게 교육의 장소를 제공해준다. 그것도 기업 내부에서다. 교육 기간 동안 학생에게 임금을 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제도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하는 건가.

“중간 규모 이상의 기업은 학생을 교육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교육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제도는 우리에겐 이미 문화라는 것이다. 뿌리를 내려 작동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를 책임으로 생각한다. 직업교육을 한다고 해서 기업에 당장 특별한 이익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직업교육을 통해 잘 훈련된 인력이 풍부해졌다. 기업도 이런 투자가 가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이득일 것 같다.

“직업교육은 독일을 청년실업 위험에서 구해줬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지금 청년실업이 큰 문제다. 폭발할 지경이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피했다. 사회 안정을 지킬 수 있었다.”

-직업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다른 것 같다.

“한국은 학위가 중요하지만 우리는 실질적인 것을 배우는 것을 중시한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존경도 받을 수 있다. 손으로 하는 일은 소중하다. 두뇌로 하는 일에 비해 급이 낮은 게 아니다.”

-당신의 아이는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나.

“아이들이 원한다면 그렇다. 독일에서는 ‘너 이제 18살이고, 다 컸고, 미래에 뭘 할지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실질적인 일을 하는 것도 괜찮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