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아프니까 사모다… 지친 사모들을 위한 ‘힐링캠프’들
입력 2013-02-01 18:03
#성도 수 100명의 S교회 O사모(45). 남편은 나를 ‘밥순이’ 사모라 부른다. 따라다니면서 할 일 없이 밥만 얻어먹는다는 것이다. 억울하다. 나라고 어디 하고 싶은 일이 없겠는가? 뭘 좀 하려 하면 설친다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있으면 게으르다 한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수군대니 차라리 가만있고 욕 덜 얻어먹자는 거다.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이며 살았다.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아프니까 사모다. 목회자 사모들은 누구보다 상처받기 쉬운 자리에 있다. 만성적으로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돼 있다. 사역자도 아니고 평신도도 아닌 모호한 포지션과 역할 혼란, 성도들의 높은 기대, 억압된 부정적 정서로 인한 감정노동, 좌절된 자아실현의 욕구, 불행한 결혼생활은 사모 스트레스 근원 5종 세트다. 이런 외부 요인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내면의 깊은 상처로 발전해 탈진을 유발하게 된다. 그렇다고 없앨 수도 없다. 문제는 대처능력과 방식이다.
2010년 하이패밀리 가정사역 평생교육원(원장 김향숙)이 사모 105명을 대상으로 사모와 스트레스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과반수가 가장 자주 나타나는 스트레스 증상으로 불안, 우울, 짜증, 무기력 등 심리적인 것이라고 응답했다. 스트레스를 억누르고 참으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우울증 등의 심리적 증상을 넘어 사역의욕 상실이나 스트레스성 신체질환으로까지 발전된다. 이는 병리학 사전에도 없는 ‘사모병’으로 불린다. 그렇다고 사모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에 속 시원히 털어놓을 통로도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외부환경 탓만 할 수는 없다. 자신도 사모로서 살다 가정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김향숙 원장은 사모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 사모전문치유세미나 ‘러빙유(Loving you)’를 개발해 연 4회 실시하고 있다. “사모라면 누구나 크든 작든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탓만 하면서 희생양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환경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사모 자신은 바꿀 수 있죠. 행복을 스스로 디자인할 줄 아는 사모로 말이죠. 상처를 사역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모야말로 행복한 사모입니다.”
세미나는 사모 정체성 회복, 쓴 마음의 치유, 관계성 회복, 갱년기 호르몬 회복, 꿈과 비전의 회복이라는 5가지 주제의 세미나를 통해 미션을 회복해 비전을 꿈꾸게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사역을 준비하도록 돕는다. 33기 세미나는 5월 28∼30일 열린다.
사모들을 위한 축제 자리도 있다. 목회자사모신문(발행인 설동욱 서울예정교회 담임목사) 주최로 매년 8월 3박4일간 열리는 전국목회자사모세미나가 그것이다. 1995년부터 15년간 총 18회의 세미나를 통해 지치고 힘든 사모들을 위로하고 가슴에 담긴 상처를 눈물로 풀고 웃음으로 푼다. 올해는 8월 12∼15일 서울예정교회 본당에서 개최된다.
설 목사는 “보이지 않는 목회자라고 불리는 사모님들의 헌신적인 수고와 봉사, 희생으로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며 “남편 목회자를 돕는 전국의 목회자 사모님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새로운 힘과 능력을 얻어 목회에 더욱 힘을 내시고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세미나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설 목사는 사모들의 문제를 능력부족으로 인한 한계와 정체성 상실이라고 진단했다. 한국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목회자에 대한 기대치도 높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모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교회에서 목회의 성공은 사모의 역할에 달려 있다는 말이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므로 무엇보다 정확한 자기 정체성 확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에는 ‘사역하는 사모=설치는 사모’라는 인상 때문에 사모들은 자신의 재능이나 꿈을 접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사모사역 전문가들은 사모들이 정확한 포지션으로 사역을 감당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것을 권면한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