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대학원생 이은정(28)씨는 6개월 전 서울 송월동 서대문교회(담임목사 장봉생) 학사(學舍)로 거처를 옮겼다. 들어가기 쉽지 않았는데 마침 학사에 방 하나가 비게 됐기 때문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온 이씨는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앙 성숙 기회와 정서적 안정감 때문에 자취 대신 교회 학사를 선택했다. 이씨는 “아무래도 집을 떠나오니 생활습관이 불규칙해지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학사에 오니 사감선생님께서 생활과 신앙을 관리해 줘 공부와 생활 모두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 대학원생 박충서(28)씨도 교회 학사에서 숙식하며 학교에 다닌다. 학부생이던 2004년부터 감리교단이 운영하는 인우학사에서 생활한 박씨는 장기 거주의 이유로 ‘가족 같은 분위기’와 ‘타 대학생과의 교류’를 꼽았다. 박씨는 “기숙사에도 잠시 지내봤지만 이곳만큼 따뜻한 분위기가 아니라 다시 오게 됐다”며 “값도 쌀뿐 아니라 신앙공동체에서 다양한 친구·선후배들과 끈끈한 정도 쌓고, 사감목사님께 상담도 받을 수 있어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말했다. 주거비용이 올라 대학가에서 방을 구하기 힘든 지방의 크리스천 대학(원)생에게 교회 학사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숙사나 원룸보다 비교적 싼 가격에 숙식을 해결할 수 있고 신앙도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어서다.
교회나 교단, 기독교단체가 운영하는 학사는 서울시내에 20개 정도다. 대다수 학사가 입사조건으로 ‘교회에 다니는 대학생’을 요구한다. 농어촌 교회 목회자나 선교사 자녀를 우선 선발하는 곳도 있다. 학사마다 규칙이나 권장사항이 비슷하다. 대부분 학사가 학생들에게 주일예배와 청년부 소그룹 모임에 참석토록 하며 새벽예배나 수·목요일 예배, 교회 봉사활동을 권장한다. 또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지켜야 하며 술·담배를 엄격히 금한다.
공동체 생활인만큼 규칙이 까다로운 데다 사실상 예배에 의무적으로 참석하게 돼 있어 학사생의 불만이 클 것으로 생각했으나 예상과 달랐다. 이들은 교회의 이러한 방침이 신앙 성장에 큰 도움이 됐으며 자칫 엇나가기 쉬운 대학생활을 의미 있게 보내는 데 보탬이 됐다고 생각했다.
경기도 파주의 집에서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까지 통학하던 대학생 이민지(21·여)씨는 교회 공동체에서 신앙 훈련을 받기 위해 교회 학사로 온 경우다. 인터넷 검색 등 여러 경로로 교회 학사를 알아본 이씨는 지난해 기도실이 있는 서대문교회 학사에 지원했다. 이씨는 “신앙 공동체 속에서 꾸준히 기도 생활을 하고 싶어 이곳에 온 거라 특별히 규칙이 부담스럽진 않다”며 “밖에서는 고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부모님과 상담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 말씀을 보거나 기도를 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신앙이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역사 깊은 학사 중에는 선배가 후배들을 방문해 격려하는 곳도 적지 않다. 1954년 설립된 인우학사는 매학기 초마다 선배들이 학사를 방문해 후배들과 함께 연합예배를 드린다. 동문회장인 김득연(78) 학교법인 동성학원 이사장은 “박상은 새누리당 국회의원, 백병동 서울대 음악대학 명예교수, 정준호 전 국방차관, 안창웅 대한성서공회 총무, 지휘자 윤학원 등 사회 각계 주요 인사들이 인우학사를 거쳤다”며 “힘들었던 시절 학사에서 지성과 영성을 단련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대구 경화여자고등학교에 기숙사도 세웠다. 앞으로도 믿음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인재를 더 많이 키워내도록 교회가 힘써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의 개인주의 성향이 심해지고 취업난으로 사회진출이 늦어지면서 교회 학사도 변하고 있다. 최근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학생이 늘면서 교회 학사뿐 아니라 대학가 주거지형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 학사의 경우 10여명의 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기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가짐 없이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 한 교회 학사생은 “종종 공동화장실처럼 여러 사람과 같은 시설을 사용하는 걸 힘들어해 중도 퇴사하는 학생도 있다”면서 “상대방의 생활습관을 존중하는 걸 피곤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예전보다 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후한 건물 때문에 학사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명덕학사 관계자는 “학사를 지원하는 학생 수가 예전만큼 많지 않다”며 “30년 된 건물이라 대학 기숙사나 원룸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기숙사도 늘어났기 때문에 점차 선호도가 낮아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60%를 밑도는 20대 취업률도 교회 학사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일부 학사들은 대학(원)생과 더불어 취업준비생과 고시생의 입사 신청을 받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일심비젼교회 학사 관계자는 “교회 안팎으로 취업준비를 하는 청년이 많아 이들에게 실제적 도움을 주기 위해 학사를 개방했다”며 “복음을 전하는 데 학사의 목적이 있기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신청을 받는다”고 했다.
학사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장학금뿐 아니라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소개해주는 곳도 있다. 서울 마천동 창조교회 전상업 목사는 “신앙 훈련과 학업에 매진하는 학사생을 격려키 위해 매달 마지막 주 헌신예배 헌금으로 장학금을 전달한다”며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사생에겐 등록금과 생활비도 적잖은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이들에게 과외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 준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대학생 신앙공동체 ‘학사’ 24시] 대학 기숙사·하숙집 구하기 힘들죠? 교회 학사로 오세요
입력 2013-02-01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