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미얀마’보다 ‘버마’
입력 2013-02-01 17:45
미얀마 사람들에겐 성(姓)이 없고 이름만 있다. 군사정권에 비폭력저항으로 맞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아웅산수지 여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웅산 수지’ ‘수지 여사’ 등의 표기는 잘못된 것이다. ‘수지 여사’란 표현을 애칭으로 봐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웅산수지는 아버지 이름 ‘아웅산’, 그리고 할머니 이름 ‘수’와 외교관이었던 어머니 이름 ‘킨지’에서 각각 따와 합친 것이다. 외국 고유명사를 제대로 표기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지난 28일 방한한 아웅산수지 여사는 31일 표기와 관련해 두 가지를 우리에게 주문했다.
우선 종전까지의 아웅산수치란 표기를 현지 발음에 가깝도록 아웅산수지로 불러 달라고 했다. 영어표기 ‘Aung San Suu Kyi’는 외래어표기법상 ‘∼치’가 옳겠으나 당사자가 직접 요구를 한 만큼 우리도 고치기로 했다. 과거 ‘리건’이 아니라 ‘레이건(Reagan)’이라고 고집했던 미국 대통령도 있었으니.
두 번째 요구는 좀 복잡하다. 나라이름을 ‘미얀마’ 대신 ‘버마’로 불러달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로서도 버마가 귀에 더 익숙하다. 아웅산수지 여사는 미얀마란 명칭은 독재정권이 임의로 바꾼 것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독재정부는 89년 갑자기 영문 표기인 ‘버마연방’을 ‘미얀마연방’으로 바꿨다.
하지만 정작 버마어 표기는 바뀌지 않았다. 48년 영연방에서 독립한 이래 지금까지 ‘피다운즈 산마다 미얀마 나인간도(Pydaungzu Sanmada Myanma Naingngandaw)’, 줄여서 ‘미얀마 나인간’이란 명칭은 그대로다. 사실 미얀마와 버마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붙어있는 표현이다.
버마 현대사에 정통한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나베 히사오(田邊壽夫)에 따르면 미얀마는 버마어의 문어체를 지칭하는 명칭이기 때문에 구어체를 뜻하는 버마와 별 차이가 없다(‘버마 군사정권과 아웅산수지’, 2003). 오히려 버마는 과거 영국 식민지시대의 명칭이기에 미얀마로 부르는 것이 더 옳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아웅산수지 여사는 왜 버마를 고집하는 걸까. 그를 따르는 민족민주동맹(NLD) 역시 같은 입장이다. 아마도 군부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한데 모으자는 상징적 주장이지 싶다. 그렇다면 민주화를 먼저 이룬 우리도 기꺼이 버마로 불러줘야 하지 않겠나.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