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변호사] 발품은 안팔고 생활고에 곁눈질… 공탁금 가로채고 재소자에 담배 반입도

입력 2013-02-01 23:05

변협이 밝힌 범죄 백태

법조 삼륜 중 하나인 변호사는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통계, 판결문, 대한변호사협회 징계 사례집에 나타난 일부 변호사 사회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심각했다. 변호사들은 경쟁에서 도태돼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범죄에 빠져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검찰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과거에는 사시 합격이 장원급제 같은 일이어서 명예, 책임, 사명감이 많았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겠다는 최소한의 자존심 같은 게 최근 들어 옅어진 것 같다”고 개탄했다.

◇판·검사 교제비 달라는 브로커 변호사=지방의 한 변호사는 음주·무면허 운전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유예기간 중 같은 혐의로 적발된 의뢰인에게 “담당 판사에게 부탁해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기각되도록 할 테니 수임료 1000만원을 송금하라”고 했다. 그러나 의뢰인은 구속됐고 이후 보석 청구까지 기각됐다. 그러자 변호사는 의뢰인의 누나에게 전화해 “동생을 빼주기 위해 지금 판사들과 술을 마시러 가야 하고 일요일에는 판사들과 골프 약속도 해 놨으니 빨리 500만원을 보내라”고 말했다.

최근 변협이 자체 징계한 사례를 보면 판·검사 교제비를 달라는 변호사들은 “판·검사와 연수원 동기라 잘 안다” “학교 선후배라 친한 사이다”며 인맥을 과시했다. 구속됐거나 구속을 앞둔 의뢰인들에게 “사건이 복잡하니 수사관, 부장검사 등 여러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판사에게 애걸복걸해야 하니 술값을 줘야겠다”며 겁을 주는 수법도 썼다.

지방의 한 변호사는 구치소에 수감 중인 의뢰인이 보는 앞에서 친한 검사들에게 전화해 친분을 과시한 뒤 1억2000만원을 요구했다. 의뢰인이 “다른 사람은 다치지 않도록 제 선에서 수사가 끝나게 해 달라”고 요구하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지방의 한 변호사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돼 항소심 재판을 받던 군수에게 돈을 빌린 뒤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가 붙잡혀 실형을 선고받았다.

◇생계에 발목 잡힌 변호사=중견 법무법인 소속 김모 변호사는 식당 임차료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의뢰인은 “임차인이 보증금 1억7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걸었는데, 변제공탁금으로 1억5000만원을 냈으니 도와 달라”고 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의뢰인이 맡긴 공탁금 1억4800만원을 회수해 5000만원만 의뢰인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사무실 운영비나 직원 급여, 채무변제비로 썼다.

주모 변호사는 135명의 입주자들에게서 받은 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 대행 업무비와 등록세 등 1억9000여만원을 가로채 부동산 투자에 사용했다. 교통사고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받은 조정금 3900만원을 가로채 직원 월급, 대출 이자로 낸 변호사도 있었다.

한 변호사는 승소 가능성이 낮은 ‘조상 땅 찾기’ 소송에서 100% 승소를 장담하며 34억원을 뜯어냈다. 당시 변호사는 승소율이 20∼30%에 불과했고 70만∼90만원인 직원 월급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들 변호사는 모두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변협 징계 사례에는 변호사들이 의뢰인의 공탁금이나 조정금을 가로챈 사례가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박모 변호사는 지인에게 자신 이름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내도록 한 뒤 개인회생·파산 및 면책 사건을 전담해 취급하도록 했다. 지인은 445건의 사건을 맡아 4억2350만원을 벌었고 변호사는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990만원을 받았다.

◇품위 내던지고 심부름꾼 전락도=변호사들은 재소자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최근 5년간 대한변협은 재소자에게 담배 심부름을 해주거나 휴대전화를 몰래 반입해 통화하게 해준 변호사 9명을 자체 징계했다. 변호사들은 담배를 다리미로 다려 납작하게 만든 뒤 서류철에 끼워 가져다주거나 필터를 제거한 담배를 비닐 랩에 싸서 전달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수감자들의 집사 노릇을 한 셈이다.

변호사들은 대부분 돈벌이가 힘들어 범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법무법인 로고스의 최진녕 변호사는 “최근 지방의 경우 전관 변호사들이 저렴한 수임료로 소액 사건까지 싹쓸이했다는 말까지 나왔다”며 “변호사 업계의 불황과 위기의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익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들의 돈벌이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변호사 자격증을 특권으로 여기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거처럼 사건을 수임해 돈을 버는 것 외에도 법률 자문 등 다양한 일거리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전웅빈 정현수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