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변호사] 변호사들도 생계형 범죄… 아! 옛날이여∼
입력 2013-02-01 22:55
변호사 Y씨는 사기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그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의뢰인에게 자신의 판·검사 인맥을 강조하며 형 집행정지나 가석방이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대신 “급하게 돈이 필요하니 8600만원을 두 달만 빌려 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수감생활이 막막했던 의뢰인은 변호사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당시 변호사는 보증금 3000만원짜리 사무실에서 월세와 관리비도 못 낼 정도로 돈이 궁했다. 이미 2억5000만원의 빚도 있었다. 검찰은 Y씨가 애초 의뢰인의 가석방을 도와줄 생각은 않고 돈만 챙기려 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2000년대 들어 수사기관에 입건된 변호사들이 3664명(중복 포함)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변호사 범죄는 2000년대 초반 음주·폭행 등 단순·우발적 범죄에서 최근 사기·횡령·배임 등 돈에 연루된 범죄로 옮아갔다. 로스쿨 제도, 법률시장 개방 등으로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경쟁에서 도태된 변호사들이 생계형 범죄에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2년간 검찰, 경찰, 사법경찰관 등 수사기관에 입건돼 검찰 처분을 받은 변호사는 전체 변호사 1만4172명(지난해 8월말 기준)의 25.8%(3664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단순 수치만 비교하면 변호사 4명 중 1명꼴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셈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고소·고발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도 다른 직업군에 비해 입건 건수가 이례적으로 높다.
변호사들이 가장 많이 연루된 범죄는 사기(637명)였다. 음주운전(512명), 교통사고(298명),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 위반(217명) 등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특히 폭처법 위반과 폭행(77명), 상해(73명), 강간(16명), 협박·공갈(18명) 등 폭력성 범죄로 입건된 변호사는 401명이나 됐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들이 시쳇말로 잡범 수준의 범죄에 관련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문서 위·변조 사용(214명), 횡령(156명), 배임(149명), 변호사법 위반(126명), 위증·증거인멸(51명)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변호사 입건은 2000년대 초반 300명선에서 2005년 213명까지 줄었으나 다시 증가해 2011년에는 375명이나 됐다.
최근에는 경제범죄에 빠지는 변호사들이 많았다. 실제 2000년대 초반 변호사 범죄는 음주운전, 폭처법 위반, 사기, 교통사고 등의 범죄가 많았다. 그러나 2004~2007년에는 사기가 172명으로 1위로 올랐고 문서 위·변조 사용(49명), 배임(49명) 등도 적지 않았다. 최근 4년(2008~2011년) 사이에는 사기로 입건된 변호사가 319명이나 됐다. 문서 위·변조 사용(112명), 횡령(82명), 배임(65명) 등 돈을 노린 사기성 범죄 증가세가 뚜렷했다.
사기 유형은 다양하다 판·검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구속 피의자 가족에게 “구치소에서 빼내려면 판사들에게 술도 사야 되니까 돈이 필요하다”고 접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의뢰인이 법원에 맡긴 공탁금을 찾아 가로채거나 소송에서 이겨 받은 돈을 의뢰인에게 주지 않고 써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한변협 정태원 수석대변인은 “변호사는 늘어나지만 수요는 한정돼 있고 그러다보니 경쟁은 계속 치열해진다”며 “생계가 막막하다 보니 사기, 횡령해서 만든 돈으로 직원들 월급 주고 임대료 내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