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분투기] 오기·근성으로 만든 튀김…한판 붙자, 대기업
입력 2013-02-01 17:25
“그 집이요? 줄 서야 돼요. 주문하고 1시간 기다려 먹은 적도 있어요.” 경기도 수원시 원천동 아주대삼거리 먹자골목 끄트머리의 분식집 ‘미스터에프(Mr.F)’. 통유리로 디자인된 분식집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이 자연스레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아주머니가 보란 듯이 프라이팬에서 왕새우튀김을 건져 올렸다. 등을 앞뒤로 맞대고 촘촘히 앉은 손님들과 가게 밖 행인들이 동시에 입맛을 다셨다.
수원에서 소문이 자자한 이 분식집을 세상에 내놓은 이는 20대 청년이다. 하루에 10개가 생기고 11개가 문을 닫는다는 자영업계에서 이승환(26)씨는 개업 1년 만에 같은 상호의 분식집을 4곳으로 늘렸다. 지난해 말에는 서울역 앞까지 진출했다. 4곳의 매출은 각각 월평균 2000만원을 넘는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라
이씨는 원래 금융권에서 일했다. 군에서 전역한 2007년, 단 1명을 뽑겠다는 신용협동조합 지점의 공고를 보고 겁 없이 지원했다. 4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고졸이구먼?” 어이없이 웃는 간부에게 이씨는 ‘할 말은 하고 집에 가자’고 작정했다. “돈 써가며 대학을 나오진 않았지만, 돈을 벌면서 사회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면접 내내 졸던 지점장이 고개를 들었다.
400대 1을 뚫고 합격한 이씨는 대출 상담부터 채권 추심까지 수없이 많은 영세 자영업자와 부딪혔다. 퇴직한 고령층, 저신용자, 다중채무자가 그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쌀과 케이크를 사들고 대출금을 못 갚는 고객의 일터에 가 보면 장사가 안 되는 이유가 보였다. 대기업 탓, 상권 탓만 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무수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씨의 ‘사업 DNA’가 꿈틀거렸다.
2년 만에 사표를 내고 후미진 곳에 작은 휴대전화 판매점을 냈다. 어머니는 서운한 기색 대신 주택담보대출금 3000만원이 담긴 통장을 건넸다. “열심히 해라. 대신,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홀로 키운 아들이 은행에 다닌다며 자랑하던 어머니였다. 6개월 만에 어머니의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 휴대전화 판매점은 2011년 3곳으로 늘었다.
일식집의 맛, 분식집의 가격
같은 상가에 이씨의 매장보다 10배 넓은 대기업 휴대전화 대리점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씨는 발 빠르게 매장을 처분했다. 어머니의 생신날 개점했던 집 근처 판매점까지 털고 나니 1억원이 생겼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던 다른 휴대전화 판매점 주인들은 결국 망했다.
1억원은 ‘미스터에프’의 종잣돈이 됐다. 떡볶이와 튀김. 경기를 안 타고, 누구에게나 친숙한 아이템이었다. 1년간 전국의 유명한 분식집 1000여곳을 찾아다니며 매 끼니를 떡볶이와 튀김으로 해결했다. “일식집에서 나오는 튀김을 분식점에서 팔 수 없을까?” 일식 튀김 기술을 가진 사람을 수소문해 3개월을 쫓아다녔다. 결국 마음을 연 ‘스승’이 일러준 비결은 반죽이었다. 여느 분식집의 것보다 얇게 만들어진 튀김옷은 재료와 빈틈없이 달라붙었다.
튀김을 씹었을 때 ‘속은 느낌’이 사라지자 손님은 자연스럽게 늘었다. 큰길에 간판도 내걸지 않았지만 입소문만으로 승승장구했다. 넘치는 주문에 이씨는 개업하고 1주일간 식사를 못 했고, 일을 도와주던 어머니는 과로로 쓰러지셨다. 로열티를 지불하고 가맹점을 내겠다는 이들이 생겼다.
다함께 살아야 한다
이씨는 아직 직영점들로부터 얻는 수입이 없다. 죽으려면 혼자 죽겠지만, 살 때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창업이 절실한 사람에게 대기업처럼 브랜드만 팔고 이익을 얻을 생각은 없어요.” 신협과 휴대전화 판매점을 거치면서 대기업 때문에 무너지는 자영업자를 너무 많이 봐서다.
이씨는 프랜차이즈보다 협동조합에 가까운 ‘투명한 직영점 형식’을 택했다.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점주끼리 노하우를 공유토록 했다. 지역 상권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줬다. 젊은이와 여성 손님이 많은 수원 남문점의 떡볶이는 맵고, 어린 아이들이 많이 오는 아주대점은 순한 식이다.
음식점 자영업자로 승리하고픈 이씨에게 분식은 첫걸음일 뿐이다. 이씨는 올해 죽은 상권에서 호텔식의 중저가 레스토랑을 열 생각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는 곳에서, 모두가 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업 분야에서, 자영업자의 이름으로 대기업에 한판 대차게 붙어 볼 생각이다.
수원=이경원 강창욱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