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종 전 총리 아들의 歸去來辭] 보리밭·메밀꽃 꿈의 들판…“景觀농업 1번지에 살아요”

입력 2013-02-01 17:15


연일 봄 같은 날씨를 보인 31일,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마을 들판의 보리밭은 더욱 파릇파릇했다. 흰머리를 흩날리던 농부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 겨울 유난했던 눈바람을 뚫고 솟아나온 ‘친구’들에게 인사하는 듯했다. 진영호(64) 학원(鶴苑)농장 대표였다. 진씨는 서해안 끝자락에 있는 고창군 공음면을 ‘국내 경관(景觀)농업의 1번지’로 일궈 냈다.

그는 이곳에서 학생 때부터 꿈꿔온 농군의 꿈을 21년째 펼치고 있다.

진씨는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장남이다.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 이사로 근무하다 1992년 5월 아버지의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왔다. 이 들판은 그의 어머니 이학 여사가 황무지를 사들여서 개간한 땅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저에게 권하셨어요. 이곳을 세상에서 제일 멋진 농장으로 만들어 보라고…. 그래서 대학도 농과대학에 들어갔지요.”

처음엔 보리와 화초를 심었다. 밤낮으로 땀을 흘렸으나 빚만 늘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투자가 계속됐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볼거리 농업에 더욱 주력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가을에 메밀을 심었다. 그러자 50여만㎡의 얕은 언덕이 봄에는 보리물결로 넘실댔고, 가을이면 소금을 뿌려놓은 듯 메밀꽃으로 뒤덮였다. 이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점차 늘었다. 처음에는 “그저 보기만 하는데, 돈이 되겠어?”라고 시큰둥하던 주변 농가들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2004년 고창군이 보리밭축제를 제의해 와 주민들과 함께 어설프게 시작했어요. 근데 뜻밖에 관광객이 27만명이나 몰렸어요.”

자신이 붙어 해마다 축제를 열었다. 봄에는 ‘청보리밭축제’, 가을에는 ‘메밀꽃잔치’. 각각 한 달쯤 열리는 이 행사에 매년 50만명, 20만명의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축제에 동참한 주민들의 손에 현금이 쥐어졌다. 내방객들이 지역 내 선운산과 고인돌군(群) 등 다른 명소까지 둘러보는 경우가 많아 경제효과만 28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일대는 2004년 전국 최초로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됐다. 이듬해에는 학원농장을 중심으로 100만여㎡가 경관보전직불제 농지로 선정됐다. 지금은 8개 마을 250여 가구 농민들이 경관보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힘을 모으고 있다.

“내방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볼거리를 주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메밀꽃 식재 시기를 두세 차례로 나누고, 여름에는 해바라기를 심었죠.”

이 같은 성과로 선동마을은 지난해 11월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최한 경관우수마을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진씨는 2000년 대통령상에 이어 2011년 일가상(一家賞)을 받았다. 척박한 농업환경에서 새로운 소득모델을 개발해 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무엇보다 농촌에 활기가 생겼습니다. 주민들도 올해로 10번째 맞는 두 축제 준비를 위해 벌써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요.”

어릴 적 꿈이 이루어져 진씨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내방객들이 “와 좋다” “멋있다” “수고했다” 등의 말을 할 때면 “가슴 벅차다”고 털어놓았다.

시골마을을 전국 명소로 만들어 놓은 ‘진짜 농군’ 진씨는 해마다 새로운 다짐을 한다고 했다. ‘신선한 볼거리와 더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농촌의 새로운 활로를 찾겠다’는 다짐을.

고창=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