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구도자들] 거룩한 이름들

입력 2013-02-01 17:49

내가 살고 있는 몬트리올 시(市)의 동네 이름은 ‘은혜로운 성모(聖母)’이다. 불어식 지명은 Notre Dame de Gr멇ce인데 너무 길고 불편해서 약자로 N.D.G.라고 약칭한다. 17세기의 본래 지명은 ‘성(聖) 베드로 언덕’(coteau St-Pierre)이었다. 우리 옆 동네의 이름은 ‘성 누가 언덕(C멏te-Saint-Luc)’이고 몬트리올 중심부는 ‘마리아 시(市)’(Villa Maria)이다. 어디에 사냐고 물어보면 나 같은 경우 ‘은혜로운 성모(N.D.G.)’에 산다고 답한다. 제 아무리 아랍권 출신이라도 마리아, 베드로, 누가 등 성경의 이름을 줄줄 댈 수밖에 없으니 과연 기독교 문화란 지명에서부터 배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명에 담긴 기독교 문화

몬트리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15번 고속도로의 이정표에도 기독교 역사의 유명한 이름들이 즐비하다. 일단 시내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왼편에는 ‘성 로렌티우스’ 구(區)가 있다. 불어식으로는 ‘셍 로랑’(Saint-Laurent)이다. 성 로렌티우스는 3세기 중반 로마 교회의 금고를 관리하는 성직자였다.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에 로마의 관료들은 로렌티우스를 체포해 로마교회의 금고를 넘기라고 했다. 로렌티우스는 ‘가난한 자들이 교회의 유일한 금고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순교했다. 몬트리올을 벗어나자마자 ‘예수 섬(島)’이 나온다. 고속도로는 ‘예수도(島)’에 자리 잡고 있는 라발 시(市)를 지나는데 요즘 이곳에 공교롭게도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조금 더 가면 오른쪽으로 ‘성 마르티누스(Saint-Martin)’ 시(市)가 나온다. 로마 군인이었던 마르티누스는 고트족과 전투하기 전날 수도자가 되고 싶으니 제대시켜 달라고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청원한다. 청원이 거절되자 그는 고트족과의 전투에서 보병대의 제일 앞줄에 무기를 들지 않고 맨손으로 서겠다고 호언한다. 이 말로 인해 마르티누스는 투옥됐지만 다음 날 고트족은 화친을 청해 왔고 전쟁이 종식됐다고 한다. 후에 수도자가 된 마르티누스는 ‘초라한 몰골에 더러운 옷과 헝클어진 머리로’ 살았지만 시민들은 남루한 그를 오히려 존경해 투르(Tours)의 감독으로 선출했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도시는 ‘성 테레사(Sainte-Th멫r멛se)’ 시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영혼의 성(城)’이란 영성 작품을 남긴 16세기 성녀 아빌라의 테레사에게서 빌려온 이름이다.

몇 분 더 달리면 왼쪽에 첨단항공산업으로 유명한 미라벨 시가 나온다. ‘성 어거스틴’ 등 성인(聖人)의 이름을 딴 세 개의 지역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도시이다. ‘나 없이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나 없이 나를 인도하시지 않는다’라고 고백한 어거스틴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조금 더 가면 ‘성 제롬’ 시가 나온다. 헌신된 수도자로 살며 일평생을 성경 연구에 몰두했던 성 제롬! 그는 유대인 랍비에게 히브리어를 배운 후 홀로 구약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완역했던 불가사의한 열정의 인물이다. 프랑스에서는 ‘제롬!’하고 외치면 길가는 사람 중 몇 사람은 뒤를 돌아다 볼 정도로 흔한 이름이다.

‘성 제롬’ 시를 지나면 곧 산악지대가 시작되는데 처음으로 나오는 산의 이름이 ‘거룩한(聖) 구원자 산(山)’(Mont Saint-Sauveur)이다. ‘성 구원자 산’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의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은혜로운 성모’에서 출발해 ‘예수도’를 지난 다음 귀감이 되는 신앙인들의 이름을 두루 거친 뒤에 ‘거룩한 구원자의 산’에 이르는 길, 이 길은 그냥 우연히 지나본 것에 불과한데 마치 순례자의 길처럼 돼버렸다. 불과 17세기부터 역사가 시작됐는데도 퀘벡 주(州)는 거룩한 이름들이 죽순처럼 가득한 곳이다. 내가 아는 한, 수도자와 순교자 그리고 성경의 거룩한 이름이 이처럼 빽빽한 지상의 장소는 없다. 유럽을 떠나 춥고 낯설고 깊은 머나먼 대륙의 숲으로 이민 왔던 옛 프랑스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신앙에 의지해 살아가고자 한 의지를 이렇게 거룩한 자들의 이름으로 나타내려 했던 것일까.

내 논문을 지도했던 선생님 중에 ‘기도하는 자’(Prieur)라는 성(姓)에 ‘요한-마가’(Jean-Marc)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분이 있었다. 이런 이름을 만든 민족이니 퀘벡 주가 거룩한 이름들의 바다인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름에 성경적 상징

마음의 바탕이 송두리째 바뀌어야 비로소 바뀌게 되는 것이 이름이고 특별히 지명은 더욱 더 그러하다. 융이 말한 바 집단무의식이란 것이 있다면 그런 공동체적 무의식은 무엇보다 이름 속에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뜻 없는 이름이 없고, 이름에 가장 진지한 뜻을 담고자 하는 것이 인간 존재이기에, 이름을 짓는 방식이 어떤 집단의 무의식을 형성하는 하나의 축이 될 수도 있겠다. 어찌됐든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내 아이들의 이름에서 돌림자를 빼고 대신 성경적 상징을 넣고자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약속’을 상징하는 ‘무지개’(霓·창 9:16)였다. 예림(霓林·무지개 숲), 예하(霓河·무지개 강), 예나(霓羅·무지개 옷)라는 이름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내 아이들이 자기의 이름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한영신학대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