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쌀겨의 비밀

입력 2013-02-01 17:27

전북 무주구천동의 가난한 농민들이 힘을 모아 금강과 연결되는 산을 뚫는다. 장비도 변변찮고 정부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기어코 공사에 성공해 금강의 물줄기를 깊은 산골까지 끌어들인다. 이유는 단 하나, 그토록 바라던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신영균·최은희 주연에 신상옥 감독이 만든 1963년의 영화 ‘쌀’의 줄거리다.

쌀을 잘 먹지 않아 쌀 소비량이 계속 줄고 있는 요즘에도 밥을 먹어야 힘을 쓴다며 빵 대신 밥만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고기를 먹은 후 국수 대신 밥을 먹어야 속이 편하다는 이들도 많다. 거기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예전에 일본 연구진이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밀가루와 쌀가루로 만든 사료를 각각 먹였다. 그리고 꼬리에 추를 매달아 물속에서 누가 더 오래 헤엄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밀가루를 먹은 쥐들은 200초 정도 버티는 데 비해 쌀가루를 먹은 쥐들은 그 배인 400초를 버텨낸 것.

고기를 먹을 때도 국수보다는 밥과 함께 먹어야 지방 섭취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증명된 바 있다. 밀가루보다는 쌀이 지방 흡수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밥을 훨씬 많이 먹은 옛날에 오히려 뚱뚱보가 적었던 이유를 알 만하다.

백미보다 식이섬유가 9배나 많은 현미가 건강에 좋다. 현미는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출 뿐만 아니라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는 식물성 기름과 리놀레산, 비타민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완벽한 식품이다.

최근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은 현미에 붙어 있는 쌀겨에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예전에도 쌀겨에서 항암물질을 발견했다는 연구가 많았다. 쌀겨에서 특정한 항암물질을 분리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쌀겨의 항암 효과가 특정 물질의 작용보다는 여러 생리 활성물질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장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효과를 입증한 후 신약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운 연구진은 쌀에서 항암작용을 하는 최적의 물질 조합을 찾을 예정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10만종의 쌀 품종이 있는데, 품종마다 고유한 생리 활성물질들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가 발견됨으로써 일약 벼농사의 기원지로 발돋움한 우리나라의 전통 쌀이 가장 적합한 후보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