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엄마의 위로

입력 2013-02-01 17:41

그게 참 이상합니다. 콩닥콩닥 하루를 살다보면 억울한 일 슬픈 일 지치고 힘겨운 일이 있기 마련인데, 그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언제나 ‘엄마’더라고요. 마법 같아요. 언제 걸어도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응, 응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무한 긍정의 목소리를 잠시 듣고 나면 어느덧 제 마음은 가득해집니다. 내 삶과 세상을 향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게 됩니다. 어제도 숨 쉴 새 없이 제 이야기만 잔뜩 꺼내놓다가 어느새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 즈음, 문득 생각이 미쳤습니다. “엄마는 외로웠겠다. 친정엄마가 없어서….” 제 외할머니는 엄마가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위로랍시고 얼른 튀어나온 말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말이었습니다. “엄마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 그래도 덜 그립죠?”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르다 친정엄마가 대답하셨습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그리움마저 없겠니?”

전화를 끊고도 한참이나 엄마의 대답이 제 머릿속을 떠다녔습니다. 기억이 있고 추억이 있고 같이 산 날 수가 많고 사연이 많았던 엄마여야만 그리운 거고 그리움도 깊은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얼굴조차 희미한 외할머니가 그립다 하십니다.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들도 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엄마’는 ‘엄마’라서… 나의 ‘근원’이요 내가 ‘비롯된 존재’이기에 절대적으로 그리운 존재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면 이 땅의 모든 ‘아가들’은 참 이기적이지요? 저 즐겁고 신나고 만족스럽고 바쁠 땐 잊고 있다가 억울하고 슬프고 지칠 때, 외롭고 두렵고 아플 때에야 비로소 엄마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걸 보면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 친정엄마를 포함해서 이 땅의 모든 ‘아가들’은 언제고 달려갈 수 있는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겠죠? 우리 근원이신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아가들’의 삶에 응, 응 무한긍정의 응답으로 위로를 주고 계시니까요.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