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2월 2일] 세상은 예배의 자리

입력 2013-02-01 17:35


찬송 : 허락하신 새 땅에 347장(통38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7장 1~8절


말씀 : 불교는 예배와 수행의 장소로 깊은 산속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절은 깊은 산속에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배와 수행의 장소로 세상 한복판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 한복판에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세상은 단순한 세상이 아닙니다. 곧 예배의 장소요, 신앙의 자리입니다. 불교는 불교적인 수행을 위해 세상을 버려야 하지만(속세를 떠나야 하지만), 기독교는 기독교적인 수행을 위해 세상을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기독교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받습니다.

이 점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8절에는 변화산상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높은 산에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제자들은 신비스럽고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몸은 순간 빛과 같이 희어졌고, 하늘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황홀한 나머지 ‘이게 바로 천국이 아니냐? 여기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그러나 주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삶의 자리는 산꼭대기의 신비스러운 그 자리가 아니라 산 아래의 사람들이 울고 웃고, 서로 부대끼는 바로 그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의 삶을 교회 안에서의 삶처럼, 사회생활을 예배생활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만 하더라도 70%가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의 연장선상에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어려움과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인임을 숨기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교회 다닌다면서요”라고 물으면 “아, 저야 뭐 교회 다니는 것은 아니고 집사람 따라 몇 번 갔다 왔다 했지요”라고 얼버무립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감시하고 차별대우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가슴에 노란 다윗의 별을 달고 다니도록 명령했을 때 유대인들은 모두 그 별을 달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왜 노란 별을 달고 다녔을까요? 나치독일의 명령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유대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들이 어린아이의 옷에 노란 별을 달아주면서 “너는 자랑스러운 유대인임을 잊지 말아라”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가슴에 노란 별을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듯이 우리도 우리가 기독교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 : 저희들의 삶의 자리는 산꼭대기의 신비스러운 그 자리가 아니라 산 아래의 사람들이 울고 웃고, 서로 부대끼는 바로 그 자리임을 압니다. 세상에서의 삶을 교회 안에서의 삶처럼, 사회생활을 예배생활처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진홍 목사(우이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