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속사람을 가꾸자

입력 2013-02-01 17:35


베드로전서 3장 1~7절

언제부터인가 명품에 빠져드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풍요사회에 번진 유행성 소비열풍’이라고 분석한다. 속인들이 명품에 열광한다면 크리스천은 이런 기류에 역행해 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소비의 극치라 할 명품에 열광한다면 크리스천은 절제와 겸손으로 내면을 가꾸는 일에 열광할 일이다. 그래서 주님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위해 절제를 배워야 한다.

정신적인 절제는 내면을 아름답게 한다. 오늘 말씀에서도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다. 외양을 아름답게 꾸미고 많은 것을 소유하기보다 우리의 속사람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가꾸는 일이 더 귀하다는 것이다.

속사람을 어떻게 아름답고 행복하게 가꿀 수 있을까? 성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고 말씀하신다. 우리 마음에 탐욕, 시기, 허영이 일어난다면 이런 악한 마음이 무성해지지 못하도록 다스려야 한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헤르베투스는 인간의 행동양식이 자기애(自己愛)를 통해 결정된다고 했다. 대부분 남의 유익을 위해 내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며, 점잖은 사람들이 모여 님비(NIMBY) 집단이 된다. 결국 자기애란 탐욕을 일컫는 또 다른 말이다. 우리들은 자기애에 사로잡혀 사고하고 행동하므로 절제의 삶, 아름다운 속사람을 가꾸는 일에 실패한다. 주님과 잘 어울리는 삶을 살지 못한다.

진심으로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고 성결하길 원하는가? 정신적으로 절제해야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부터 시작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타적 사랑에 근거해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물질적 절제인 검소함 또한 내면을 가꾸는 길이 된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말하길 검소하게 살 때 세 가지 유익이 있다고 했다. 첫째 자기 분수를 잘 지키므로 나중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된다. 둘째 자기 몸 기르는 것을 절약하므로 괴로운 처지에 있는 자를 도울 수 있게 된다. 셋째 목전에 부족한 것을 참음으로 긴급한 때에 물질을 남길 수 있게 된다. 이런 말씀도 있다. “술을 즐겨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 23:20∼21)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은 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누리다가 화를 당했다. 요즘 사회가 병들어가고 젊은이들이 잘못돼가는 이유 중 하나는 절제하지 않음에 있다. 절제는 쓸 것이 많아도 충분히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 유익은 실로 헤아리기 어렵다.

우리는 소비가 미덕인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소비를 위한 욕망을 독려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필요악에 몸담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도 부도덕한 면을 방치해야 하는 갈등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좀 부족하더라도 피조세계와 조화롭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발전은 더디더라도 덜 소비하며 타자를 배려하는 삶이 크리스천으로서 되찾아야 할 삶이다.

온 세상이 물질을 우상으로 받들더라도 믿음의 백성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주님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위해 정신적·물질적으로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박종덕 서기장관(한국구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