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흔들어 깨우는 낯선 문장의 향연… 루시드폴, 첫 소설집 ‘무국적 요리’
입력 2013-01-31 19:03
스위스 유학파인 화학자 출신 가수 루시드 폴(본명 조윤석·38·사진)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가사집 ‘물고기 마음’과 시인 마종기와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등으로 출판의 영역으로까지 활동 범위를 넓힌 그가 첫 소설집 ‘무국적 요리’(도서출판 나무나무)를 냈다.
8편의 단편이 묶인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무국적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익히 알던 소설들과는 영 딴판이다. 그의 개성은 제목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탕’ ‘똥’ ‘독’처럼 한 글자로 된 제목이 있는가 하면 ‘행성이다’ ‘싫어!’처럼 낯선 느낌을 주는 제목도 있다.
주인공 이름도 낯설다. ‘목군’은 단편 ‘기적의 물’의 주인공 이름이며 ‘마유’는 단편 ‘탕’의 주인공 이름이고, ‘요수’는 동물우화 형식의 소설인 ‘똥’의 주인공인 친칠라토끼의 이름이다. 또 다른 작품 ‘독’의 주인공인 우체부 ‘우미’의 성별은 여성인지 남성인지 불확실하다. 바로 그렇기에 ‘무국적 요리’는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으로 안성맞춤인지도 모른다.
‘기적의 물’을 보자. 주인공 목군은 어린 시절 마셨던 우물물의 맛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옛집을 떠난 이후 목군은 그 우물물만큼 달고 시원한 물을 마신 기억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별 기대 없이 설치한 정수기에서 그토록 찾던 그 우물물을 만난다. “목군은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따라 죽 들이켰다. 어, 달다? 이 물, 왜 이렇게 달지? 목군은 수돗물로 입을 몇 번 헹구곤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목구멍으로 넘어온 물이 서서히 퍼지면서 온몸을 흔들어 깨우는 듯 했다.”(‘기적의 물’ 부분)
목군은 여자친구를 불러 정수기 물맛을 보여주지만 그녀의 반응은 뜨악하다. 오히려 여자친구는 목군에게 입맛이 까다롭다고 핀잔을 준다. 목군은 홧김에 술을 마시며 정수기에 든 기적의 물과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목군의 꿈이었을 뿐, ‘기적의 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돌연한 파국은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루시드 폴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은 “아 네, 올해 아주 선풍기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똥’)처럼 소설 속에 드문드문 박힌 썰렁한 개그의 문장들이다. ‘썰렁 개그’와 ‘돌연한 파국’이야말로 루시드 폴이 추구하는 무국적 소설의 언어감각으로 읽힌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