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48) 부정의 힘으로 던지는 돌직구의 언어… 시인 김승일

입력 2013-01-31 19:03


(48) 부정의 힘으로 던지는 돌직구의 언어… 시인 김승일

김승일(24·사진)은 교육도시를 표방한 경기도 과천 태생이다. 어린 시절, 과천엔 들도 많았고 개천도 있었고 계곡도 있었다. 어딜 가나 나무가 많았다. 주위가 온통 초록이었다. 버스로 10분만 가면 서울인데도 그는 늘 초록동네에서 놀았다. 초록은 눈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정서의 색깔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386세대의 심금을 울린 ‘찬비’의 가수 윤정하이고 아버지는 KBS PD였다. 집안의 정서가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 게다가 증조부는 일본에서 활동한 조각가, 할아버지는 교육철학과 교수였다. 그의 혈관엔 4대에 걸친 지성과 예술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졸업하고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그의 첫 시집은 ‘에듀케이션’(2012)이다. “할아버지는 제가 한 살 때 돌아가셨어요. 교육에 열정을 바치신 할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미담도 참 많았지요.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지만, 시집 제목을 ‘에듀케이션’으로 정하고 교육, 학교에 대한 제 관심을 느끼게 될 때면 정말 핏줄이란 게 있나 싶고 놀랍기도 합니다.”

대학 시절, 이 세상에서 가장 굳센 여자애가 등장하는 ‘마녀의 딸’이라는 희곡을 쓰기도 했던 그는 플롯과 캐릭터 구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가꾸기 시작한다.

“친구들이 모두 집에 돌아간 뒤에도 나는 학교에 남아 침을 뱉는다. 구령대에서, 나는 침을 멀리 뱉는 애. 부모가 죽고 세 달이 흐르자, 부모가 죽고 네 달이 흐른다.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동생이 뛰어온다. 변기에서 쥐가 튀어나왔어. 괜찮아. 내일부터 학교에 오자. 똥은 학교에서 누면 되지. 그래 그러면 된다.”(‘부담’ 일부

“그래 그러면 된다”로 끝나는 이 시는 상황이나 의미 같은 것을 압축하고 단순화시킨 돌직구의 발화를 보여준다. 언어의 직진성이 바로 그것. 이런 발화의 태도는 학습된 것이 아니라 거의 생래적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인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인맥이 싫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고 윤리는 입으로만 떠들지요. 시인들도 다 똑같아요. 사기꾼들이죠. 그래서 저는 시인들을 동경하지 않지요.”

그는 수사(修辭)나 이미지마저도 표현의 위선으로 보는 혈기왕성한 전위인 것이다. 수사나 이미지를 떠올리면 뭔가 멋들어지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수사나 이미지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기에 혐오감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쓰고 싶은 것일까.

“나는 무인도다. 나의 왕은 최원석이다. 나, 무인도는 아직 최원석의 것이 아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최원석의 것이 되지 않겠는가?// 지금은// 벌레들의 것이구나. 울퉁불퉁한 지면과 폐에 나쁜 바닷바람의 것이구나./ 나는 아직 나의 왕의 악몽이구나.// 그리고// 나는 다시 무인도가 되었다.”(‘무인도의 왕 최원석’ 일부)

그는 다른 시인들이 쓰지 못한 것을 쓰려고 한다. 무인도의 시점으로 무인도의 독재자를 다룬 이 시가 적절한 예이다. 그는 항상 새로운 곳에 위치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써놓고 보면 그렇게 새로운 것도 아니기에 그는 새로운 걸 더 많이 쓰고 싶어한다.

“제 시는 부정(否定)입니다. 자기편도 부정하고 남의 편도 부정합니다. 애초에 편이라는 게 없는 것이죠. 나중에 딸을 낳으면 이름을 ‘김아니’라고 지을 겁니다. 부정하는 이름이지요. 누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하면 저는 그 말을 부정할 것입니다. 누가 누구한테 투표를 하라고 하면 나는 그 후보를 부정할 것입니다. 저는 부정으로 점철된 인간입니다.”

요즘 시 창작교실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그는 강의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무한한 가능성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인데, 근미래의 자화상에 대해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근미래요? 근미래엔 인터뷰를 잘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점점 사생활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사생활은 제 작품에서만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