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회장 법정구속 판결] 재판부 “최 회장이 주범”… 형제 주장과는 정반대 판결

입력 2013-01-31 22:26


최태원 SK그룹 회장 형제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465억원의 계열사 자금을 선물투자 자금용으로 송금할 당시 두 형제의 공모 여부였다. 재판 내내 최 회장 측 변호인은 자금의 임의사용을 요청한 쪽은 최재원 부회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31일 이 돈의 실질적 사용 주체는 최 회장이라고 못 박으며 실형을 선고했다.

◇465억원 실질적 사용 주체는 최태원=재판부는 비정상적인 펀드의 결성 및 출자 상황을 최 회장에 대한 유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먼저 “2008년 말 약 한 달 사이에 주력 계열사 중심으로 1000억원대에 이르는 출자가 이뤄졌음에도 계열사 차원에서는 별다른 내부 검토나 협상 없이 펀드 결성이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즉 짧은 기간 거금이 오가는 데도 회사 내부에 별 말이 없었던 것은 오너인 최 회장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판부는 “펀드 결성이 최 회장의 개인재산관리 조직인 ‘관재팀’의 주도하에 추진된 객관적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 부회장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찰제 판결’ 더 이상 없다…양형기준 따라 선고=재판부는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자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최 회장을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은 자신이 지배하는 다수의 유력기업을 범행의 수단으로 삼아 활용함으로써 기업 사유화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며 “SK그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버렸다”고 밝혔다. 또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피고인의 형량을 정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하는 데 동의할 수 없듯이,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책임을 경감해 주는 것도 반대한다”며 “현재 시행 중인 양형기준에 따라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 사법부가 재벌에 대해 경제적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관행처럼 선고하던 과거에 대한 일종의 반성으로 풀이된다. 최근 법원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이어 최 회장에게도 실형을 선고하면서, 재벌 비리에 대한 엄정한 처벌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찰의 잘못된 판단=최 부회장을 주범으로 보고 기소한 검찰은 오판 논란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최 회장에 대한 양형 사유를 판단하면서 “1000억원대의 회사자금을 펀드 조성용 선지급금으로 출연하도록 해 베넥스인베스트를 통해 관리하다가 그 자금 중 약 500억원은 대외로 유출해 임의로 사용하고 나머지 약 500억원을 유출된 자금의 보전을 위해 전용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1차 출자금 465억원을 ‘돌려 막기’ 위해 전용한 2차 출자금 약 500억원의 사용 주체도 최 회장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검찰은 2차 출자금 횡령 혐의를 최 부회장에게 걸었다. 이에 재판부는 “최 부회장이 자금의 전용행위라는 범행에 본질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기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결국 검찰의 오판으로 2차 출자금 500억원 횡령에 대해선 누구도 처벌받지 않게 됐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