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지윤아 네 연기는 최고야”… 다운증후군 발레리나에 관객들 기립박수
입력 2013-01-31 18:09
“발레를 하면 살아있는 느낌을 받고 왕따 당했던 기억을 잊을 수 있어요.”
30일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콘서트홀(675석)에서 열린 처음 막을 올린 스페셜올림픽 문화행사는 김주원, 김지영, 이원국, 이영철 등 전·현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들과 마술사 이은결이 함께 한 ‘발레&매직’이었다. 하지만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발레 ‘지젤’의 페전트 파드되(소작농 이인무) 중 여자 솔로를 춘 지적장애인 발레리나 백지윤(22)씨다. 지윤이가 다소 서툴지만 침착하게 공연을 끝냈을 때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다운증후군인 지윤이는 13살 때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처음 본 뒤 발레에 완전히 매료됐다. 처음엔 동네 발레 학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지윤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 이명희(48)씨의 지극한 모성애에 학원측은 감동했고, 지윤이는 학원에서 발레를 배울 수 있게 됐다. 중학교 시절 왕따 때문에 유학을 간 필리핀에서도 발레를 꾸준히 배운 지윤이는 현재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 무용과에 다니는 어엿한 여대생이다.
어머니 이씨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평형감각이나 근력이 매우 약해서 발레를 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지윤이는 시력도 좋지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배우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지금까지 도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발레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는 지윤이는 “어릴 땐 꿈이 없었는데, 발레 때문에 꿈이 생겼다”면서 “오늘 좋아하는 김주원 언니, 이영철 오빠랑 같은 무대에 서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인지나 수리 능력은 낮지만 어휘력과 사교성이 좋은 지윤이는 이날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 만난 국립발레단 언니와 오빠들에게 애교를 부려 귀여움을 받았다. 지윤이는 “주원 언니처럼 나도 잘 췄으면 좋겠다”면서 “특히 토슈즈를 신고 예쁘게 추고 싶다”고 부러워했다. 근력이 약한 지윤이는 발레를 배운지 꽤 됐지만 앞이 딱딱한 발레리나용 토슈즈 대신 누구나 신을 수 있는 발레슈즈를 신는다. 특히 지난해 집에서 토슈즈를 신고 연습하다가 부상을 입은 왼쪽 발이 아직도 낫지 않았다.
무대에 오르기 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공연하는 것은 처음인데다가 턴(회전)에서 실수할까봐 긴장된다”던 지윤은 이날 무대 위에서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공연을 마쳤다. 앞으로 이영철 같은 발레리노와 듀엣을 추는 것이 꿈인 지윤이는 “먼저 다이어트를 해야할 것 같다”고 웃었다.
무대 뒤에서 두 손을 꼭 쥐고 딸의 공연을 지켜본 어머니는 “지적 장애인이 참가하는 스페셜올림픽에서 우리 딸이 춤출 수 있어서 너무 영광스럽다”면서 “지윤이를 보면서 다른 지적장애인 부모님도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다”고 뿌듯해했다.
평창=글·사진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