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신 대동아공영권
입력 2013-01-31 22:42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으로 1946년 재판을 받다 옥사했다. 그는 외상에 오른 뒤 추축국 간 삼국동맹을 체결했고 동남아 침략 정책을 주도했다. 1940년 8월 1일 그는 담화를 발표해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외교노선으로 내놓았다. 서양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려면 아시아가 단결해 공동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권역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메이지 시대부터 제기돼 온 흥아론(興亞論)을 근간으로 한 이런 주장에 따라 일본 내각은 그해 7월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국책요강으로 내세웠고, 총리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이듬해 1월 대동아공영권 건설 방침을 제시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뒤인 1943년 11월 도쿄에서는 만주국 중국 필리핀 태국 버마 인도 등의 대표라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동아공동선언’이 채택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본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고, 침략 전쟁의 검은 속내를 치장하기 위한 가면이었다. 대동아공영의 깃발 아래 일본은 아시아 곳곳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아갔고, 점령지에서 가혹한 정책을 폈다. 항일 독립운동은 철저히 탄압됐고, 자원과 노동력은 수탈당했다. 대동아공영은 강점지 지식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미약으로 작용해 항일 독립운동을 분열시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동남아를 택해 일본의 군사력 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국제여론 조성에 나서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정상이 아베 총리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한다. 필리핀 외교장관은 일본의 재무장이 아시아의 균형요소가 될 것이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고도 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런 반응은 우리와는 매우 거리가 있다. 서태평양 여러 섬을 놓고 빚어지고 있는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 대한 반발 때문이거나 중국의 군사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일 것이다. 그러나 대동아공영 주장의 아류라고 부를 만한 일본 우익의 외교에 편승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일본의 군 보유 금지는 전쟁을 일으킨 대가이자 세계인을 향한 평화의 약속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도 없이 이를 뒤집으려는 저의가 음흉하다. 중국의 패권주의도 문제지만, 이를 견제한답시고 평화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서세동점에 맞선다는 미명 아래 일본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려 했던 대동아공영론과 본질에서 차이가 없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