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朴 당선인과 인사청문회

입력 2013-01-31 17:48


“우리는 이번에 국회 인사청문회의 존재 이유를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다. 보은인사의 문제점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고발하고, 잘못된 인사는 국민 여론에 의해 철회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 현 정부 인사검증 시스템은 완전히 녹슬었다. 여당 사람들조차 현 인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개각하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겠다.”

이는 2006년 2월 5일 참여정부 장관 5명에 대한 청문회를 앞두고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이 발표한 논평이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었다. 이 부대변인은 박 대표의 최측근이었고, 지금은 박 당선인 비서실의 정무팀장을 맡고 있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는 이름 석 자를 제외하고 모든 게 청문회 대상이다. 뭘 청문하고 안 하고의 그 내용에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총리는 국정의 반을 책임져야 하고, 실무적인 면에서는 대통령보다 총리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것, 총리가 갖춰야 할 모든 게 청문회 대상이다. 그런데 여당은 한나라당이 청문회에서 제기할 모든 걸 틀림없이 정치공세로 받아칠 것이다.”

이 말은 2006년 4월 초 한명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됐을 때 박 당선인이 주재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오 원내대표가 한 발언이다. 그해 8월 1일에는 같은 당 나경원 대변인이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청문회에서 문제가 되자 “노무현 대통령이 ‘인사 법치’ ‘국민 눈치’ ‘주변의 코치’를 무시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대통령의 독단적 인사 스타일을 비판했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의 정부 때인 2000년 6월에 도입됐다. 집권당에서 졸지에 야당으로 바뀐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먼저 요구해 제정된 법이다. 정책 자질뿐 아니라 높은 도덕성과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인물을 임명케 하자는 취지가 적극 반영된 제도다. 한나라당은 법을 만든 2년 뒤에 장상, 장대환 총리 지명자를 연거푸 낙마시키는 등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런데 박 당선인이 30일 인사청문회 제도에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는 “청문회라는 게 일할 능력에 맞춰져야 하는데 잘못 가고 있다. 좋은 인재들이 청문회가 두려워 공직을 맡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거의 똑같은 얘기를 2011년 2월에 이명박 대통령이 한 적이 있다. 당시 한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청문회에서 지나치게 공격하면 본인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내가 (고위직을 맡아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했더니 청문회에 나가서 가족과 집안이 다 공개되는 게 싫다며 거절하더라”고 발언했다. 특히 “언론 보도가 너무 과거 잣대로만 보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치권에서 박 당선인의 청문회에 대한 불만이 적절하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청문회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이명박 정부를 벌써부터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사퇴한 점을 감안하면, ‘원칙’과 ‘법’, ‘질서’를 중요시해온 당선인의 평소 소신과도 동떨어진 얘기라는 비판이다.

김 총리 지명자가 우리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문제들로 인해 사퇴를 했고, 아직 많은 국민들이 허탈해하고 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도 “검증이 부실해도 너무 부실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그를 지명했던 박 당선인이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든 유감이나 사과의 뜻을 표하는 게 맞지 아닐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국의 재상을 임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손병호 정치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