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굿바이 장미란

입력 2013-01-31 17:47


가족 중에 운동을 했던 사람이 있기 때문일까. 경기장에 서 있는 선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생면부지의 어린 선수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단내 나는 울음을 쏟아냈을까 생각하니 그가 웃고 있어도 가슴이 짠하게 저려온다.

세상에 쉽게 살아지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마는 운동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버거운 일이다. 물론 불편한 곳 없이 남다른 재능까지 갖고 태어났으니 축복받은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능만으로 성공하는 천재란 없다. 은퇴까지 어제의 자신과 싸워 이겨야만 내일을 말할 수 있는 것이, 가까이서 지켜본 그들의 인생이다.

하루하루가 인간의 한계와의 사투이고 정상에 선다한들 끝이 아니다. 올라선 높이만큼 중압감을 어깨에 메고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그리고 선수로서의 삶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혼자서 달려야 한다. 출발선을 떠난 마라토너처럼.

지난 화요일, 그렇게 15년을 달려온 역도 여제 장미란 선수의 은퇴식이 있었다. 한국 여자역도 사상 첫 그랜드슬램 달성부터 세계 선수권대회 4연패, 전국체육대회 10년 연속 3관왕까지. 15세 소녀가 세계를 들어 올리며 대한민국의 자랑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지난해 런던올림픽 3·4위 결정전 뒤 젖은 눈으로 바벨을 쓰다듬고 조용히 입 맞추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사람만의 정제된 모습이랄까. 가지런히 정돈된 차밭을 보는 것처럼 차분하고 맑은 느낌이었다.

그는 체육인으로서의 자존감과 긍지가 높으며 선수들의 맏언니로서 책임감도 남다르다. 그래서 후배들이 사회에 나가 존중받기를, 각자 새로운 삶에 안착하길 바란다. 그런 바람이 있었기에 매사에 정직하고 반듯한 사람, 지금의 그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리라.

은퇴식이 끝나자마자 그는 전날까지 함께 촬영했던 방송사의 국토대장정 대원들에게로 돌아갔다. 뜬금없이 한겨울에 행진이라니, 다소 놀랬지만 ‘낙오자 없는 세상’이라는 취지에 공감해 길을 나섰다는 설명에 참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체육인이 되겠다던 그가 아닌가. 많은 우려의 시선 앞에서 그는 무엇을 하든 역도를 했던 것처럼 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마음가짐과 품은 뜻이 참 미덥고 고맙지 않은가. 진심으로 그의 착한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며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하길 기원한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