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 당선인 의식 정체돼 있으면 큰 위기온다

입력 2013-01-31 17:45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인사청문회 절차와 언론의 검증 보도에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제 새누리당 강원지역 의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 때문에 일해야 할 사람이 나서지 않을까 염려했다. 사퇴한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와 청문회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그의 지적처럼 우리 인사청문회가 공직후보자의 사생활을 시시콜콜 캐는 바람에 본인과 가족들의 사생활이 여과 없이 공개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희귀병 때문에 군대에 가지 못한 자녀를 둔 후보자의 경우 병 이름까지 거론된 적도 있고, 후보자의 초등학교 성적표까지 공개되기도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사소한 흠집인데도 야당은 부풀려 공격하고 여당은 감싸기로 일관해 청문회가 정쟁 장소로 변한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후보자와 김 지명자의 낙마는 인사청문회 제도를 탓할 일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새 정부 초대 총리 지명자가 자진사퇴했겠는가. 장애를 극복한 완벽한 법치주의자란 천거 이유와는 달리 재산 문제와 자녀들의 병역특혜 의혹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철통보안을 앞세운 박 당선인의 깜깜이식 인사 스타일이 더 큰 문제 아닐까. 후보자를 지명하기 전에 재산과 병역 등 기초적인 검증만 거쳤어도 피할 수 있었던 일을 밀실에서 독단적으로 처리하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지금이 박 당선인의 아버지가 집권했던 유신시대도 아닌데 제왕적 대통령제를 연상케 하는 극단적인 비밀주의를 고수하는데 대해 많은 국민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인사에 있어서 보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보자에 대한 정밀한 검증이란 사실은 이미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고 청문 제도가 시행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선인 생각에는 지고지순한 인물일지라도 청문회에 오를 경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적 네트워크에 의존하기보다는 공적 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고 누누이 지적해 오지 않았던가. 공개적이고 투명한 루트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수평적 당·청 관계 확립과 책임총리제 실시도 오래전부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통령 선거 이후 박 당선인의 기세에 눌린 새누리당은 아무 말이 없다. 책임총리에 대한 기대도 매우 희박한 상황이다. 소신파보다 순종파를 선호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 이미 총체적 위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의 뜻을 곰곰이 새겨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거듭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