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심야식당’ 배우 한채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 첫 앨범도 함께 묻혀 펑펑 울었죠”
입력 2013-01-31 17:36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었어요.”
30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난 가수 겸 배우 한채윤(29)의 첫마디다. 그는 대학로 인기 뮤지컬 ‘심야식당’에서 통기타 가수를 꿈꾸는 치도리 미유키 역을 맡고 있다. 그녀에게 노 전 대통령은 아픈 기억이다. 언뜻 정치적 발언 같지만 노 전 대통령은 가수가 되고자 했던 한채윤에게 세상이 녹록지 않음을 가르친 셈이 됐기 때문.
“어려서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2009년 5월 23일 첫 음반을 출시했어요. 방송 녹화도 그날 예정됐고요. 한데 바로 그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거예요. 모든 게 멈추더군요. 첫 앨범 ‘마네킹’은 그렇게 사장됐어요. 떨리는 가슴으로 MBC TV
‘음악중심’ 무대에 올라가 녹화를 마쳤는데 추도방송 편성으로 나가지 못했죠. ‘어떻게 준비했는데…’ 하면서 펑펑 울었죠.”
‘마네킹’은 유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강동철)’의 곡이었다. 앞서 2008년 ‘용감한 형제’를 통해 ‘미쳤어’를 받은 손담비(30)는 스타가 됐다. 제2의 손담비가 될 줄 알았다.
한채윤은 서강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어 ‘서강연극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서강연극회’는 53년 전통의 정통 극회로 배우 정진수 문성근 정한용, 영화감독 박찬욱 최동훈 이정향 등을 배출한 곳이다. 연기와 음악성 등을 고루 갖춘 그녀는 유망주였던 것.
“열여덟 살 때부터 배우 명계남아카데미에서 연기를 배웠어요. 양익준(영화 ‘똥파리’ 감독) 오정세(영화배우)씨 등과 함께였지요. 그러저런 힘을 모아 음반을 낸 건데 너무 허탈하게 된 거죠. 아, 나는 꿈꾸면 안 되는구나, 재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취직도 쉽지 않고, 주머니에 돈도 없고, 부모님께 눈치 보이고… 탈탈 털어서 프랑스 파리로 갔어요. 한 달 정도 지내며 진로를 생각하려고요.”
그녀는 잠깐 여행 삼았던 파리에서 6개월을 지냈다. 그리고 내린 결론. “무대에 서지 않고는 못 살겠다”였다. 하지만 귀국해서도 번번이 오디션에 낙방했고, 설령 됐어도 출연을 앞두고 어그러졌다. ‘여전히 머무는 기억의 조각들/ 아물지 않은 내 상처의 아픔은/ …넌 내게 커다란 위로가 될 거야/ 날 안아줘, 날 안아줘’(한채윤 작사·작곡 ‘날 안아줘’ 중)
20대의 욕망은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작사·작곡을 하며 단순한 가수가 아닌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사실상의 첫 앨범 ‘날 안아줘’ 발매를 앞두고 있다. 음반은 4일 출시된다.
“영화 ‘가족의 탄생’(2006) ‘수’(2007), 연극 ‘왕은 왕이다’(2010) ‘너의 왼손’(2010) 등에 출연했으나 단역이었어요. 통기타 무대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큼은 아니었고요. 엄마가 그러시데요. ‘넌 상처가 없어서 그래’라고…. 엄마는 ‘주부가요열창’ 등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상을 휩쓰는 분이거든요.”
한채윤은 명작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처럼 20대를 질문 속에 살았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일본만화 원작 ‘심야식당’ 뮤지컬 오디션에 통기타를 들고 도전해 높은 경쟁률을 뚫었다. 10년 만에 이룬 성취였다. 뮤지컬 무대 위에서도 가수로 성공하는 역이었다. 이제 그녀는 공연이 끝나면 무대에서 내려와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준다.
“‘심야식당’에선 삶의 마이너들이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꿈과 상처를 나누죠. 저는 제가 대단한 줄 알았어요. 한데 딱 ‘88만원 세대’로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라고요. 사회에 나서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작은 것 하나도 자기 상처 없이 얻어지지 않는다고요. 우리 엄마 말씀이 새삼스레 진리다 싶어요.”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