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돈 없이 산다는 것은…” 家長 마르크스의 고뇌

입력 2013-01-31 17:36


마르크스의 사랑/피에르 뒤랑/두레

경제 위기와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좌파 경제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19세기 독일의 사회주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새삼 주목받는다. 영국의 전기 작가 아이자이어 벌린이 저서 ‘카를 마르크스’에서 지적한 대로 “살아서 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추종자들에게 지적·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적 위력을 실감케 한다.

마르크스 사상이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그의 구체적인 삶, 즉 인간적인 모습은 덜 알려져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투사와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가 아닌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인간 마르크스라는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사랑스런 아내 예니, 믿고 의지한 아버지, 평생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 등 가족·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낡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자료 등을 찾아내 연애를 하고, 가정을 일구고, 친구들과 우정을 주고받는 보통 남자 마르크스를 그려냈다. 그러면서 마르크스가 추방당하고 쫓겨 다니는 망명생활의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지독한 가난과 질병이 가져오는 역경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서 저술활동과 투쟁을 계속했는지 등을 한 편의 기록영화처럼 보여준다.

편지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건 ‘가장(家長) 마르크스’의 민낯이다.

“돈 한 푼 없이 산다는 것은… 우리 집에서는 만성병이 되어 있다네.”

“나는 이미 온갖 종류의 불운을 경험해 왔지만, 이번(첫째 아들의 죽음)에야 비로소 진짜 불행이 무엇인지 알 것 같네.”

“내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자살했을 것이네.”

생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가장의 열패감, 자식을 가슴에 묻은 고통,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식을 통해 희망을 부여잡으려는 부성애…. 그 역시 보통 아버지였던 것이다. 자녀와 손자들에게 목마 태워주기를 즐겨하고, 딸의 남자친구에게까지 편지를 보내 ‘잔소리’를 하는 아버지 마르크스의 모습은 정겹다.

“실례인 줄 아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들어주기 바라네. 자네가 내 딸과 계속 사귀고 싶다면 자네의 언행 표현방법을 잘 생각해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네. (중략) 자네의 현재의 처지는 내 스스로 얻은 정보에 따르면 결코 나를 안심시켜주지 못하고 있네.”

올해는 특히 마르크스가 사망한 지 130년이 되는 해다. 이 책은 마르크스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데 기여할 것이다. 신대범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