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인류 발자취, 창조와 파괴의 ‘두 얼굴’

입력 2013-01-31 17:36


인간이력서/볼프 슈나이더/을유문화사

인류는 정말 미스터리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지구엔 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쥐, 바퀴벌레, 검치호랑이, 바이러스 따위가 높은 밀도로 살고 있었는데 인류가 차츰 이들을 몰아내고 지배자가 됐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의 최종 승자로서의 인류는 지구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여러 가지 진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인간은 출생부터 여느 동물과 달랐다. 침팬지는 태어날 때 두뇌의 40%가, 송아지는 100%가 성장한 상태에서 태어나지만 인간은 단 23%만 성장한 채로 태어난다. 이것은 출산 시 큰 머리로 인해 산모와 태아가 사망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죽음마저도 특별하다. 인간의 친척인 네안데르탈인이 매장을 시작한 이래, 인간에게는 다양한 장례 의식이 발전해 왔다. 피지 섬에서는 죽은 추장을 기리며 절단한 수백 개의 손가락이 발굴됐고, 샌드위치 군도에서는 추장이 죽으면 부족민들이 앞니를 하나씩 뽑는다. 구약성서에는 사람이 죽었다고 몸에 상처를 내거나 먹물로 글자를 새겨서는 안 된다는 구절도 있다.

인간에게는 이처럼 연민의 정서가 있는 반면에 파괴적인 양면성도 지니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실험이라는 명목 하에 동물들에게 일어나는 여러 잔인한 일들을 보고 ‘지상의 악마는 인간이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다. 인류 문명을 이룩한 것으로 칭송받는 ‘농업’의 발명 역시 숲의 식물들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은 일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밭을 일구기 때문이다. 또한 농업의 발달로 부의 집중이 일어났고, 자신의 거주지를 지키기 위해 이웃한 인간들 사이에서 대립과 반목이 생겨났다. 칸트는 일찍이 농사는 불화의 씨앗을 뿌린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인간은 같은 종인 다른 인간에게도 잔인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19세기에 금과 물개를 찾아 지구의 끄트머리, 남아메리카대륙 남쪽 끝에 있는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의 나바리노 섬을 찾아온 사람들은 원주민인 야간족을 거의 멸종시켰다. 그 결과 1963년 이곳에 선교를 위해 방문했던 케네트 빌리암스는 바다와 산과 강을 상대로 설교해야 했다. 설교를 들을 사람들이 모두 초라한 십자가 밑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처럼 파괴의 본능과 창조의 본능을 번갈아 작동시키는 독특한 이력으로 문명을 일궈왔다. 단적인 예가 1890년대 미국 뉴욕에 있다. 당시 미국 대도시엔 10만5000마리의 말이 어슬렁거렸기에 뉴욕의 교통 계획관은 ‘말똥 예보’를 해야 했다. “도시의 거리에서 말똥을 줄여 준 것은 지하철이다. 1886년 발명된 자동차 역시 말똥을 대체해 나갔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1899년 최초의 택시가 허가되었으며 미국에서는 1919년 마지막 마차 철도가 운행을 중단했다.”(109쪽) 지구상의 웬만한 대도시가 말똥으로 뒤덮일 무렵, 새로운 운송수단인 자동차와 지하철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 출신의 저자 볼프 슈나이더는 이러한 점을 고려한 뒤 “인간의 이력은 앞으로도 계속 쓰여 나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오늘날 인류에게 닥친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지구온난화이다. 하지만 저자는 지구온난화 방지 운동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시급성이나 위험성이 너무 부풀려졌다고 비판한다. 그는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은 모든 난관을 승리로 변화시켜왔고, 우리가 이런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조짐은 아직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정모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