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차인홍 (9) ‘행실 바른 부잣집 딸’ 나와의 결혼 위해 가출

입력 2013-01-31 17:42


베데스다 4중주단은 한국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의 도움으로 서울에 있는 회관 기숙사를 이용했다. 또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회를 열었고 여러 교수님들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특히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김남윤 교수님께서 레슨을 해주신 일이 기억에 남는다.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로 계신 그는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내는 분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어렵게 그분께 레슨을 받고 싶다는 말씀을 전했고, 나에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다.

연습량을 중시하는 호랑이 선생님으로 알려진 김 교수님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연습했다. 교수님은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셨다. 레슨비를 받지도 않으셨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학력도 변변치 않은 나에게 교수님의 지도를 받을 기회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내가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선 또 귀중한 분을 보내주셨다. 중학교 과정은 1년 만에 끝냈지만 고교 과정의 영어 과목이 너무 어려워 진도를 나갈 수 없던 때였다.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김태경 선생님이 헌신적으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중도 포기했을지 모른다.

그는 밤마다 숙소로 오셔서 영어를 가르쳐주셨을 뿐 아니라 마치 베데스다 4중주단의 매니저처럼 우리를 챙겨주셨다. 가장 고마운 일은 우리에게 유학의 길을 열어주신 것. 김 선생님과 친분이 있던 서울대 신동옥 교수님을 통해 유학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됐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신 교수님은 미국 신시내티대에서 공부하던 시절 알게 된 현악 4중주단 ‘라살(La Salle)’에 우리를 소개해준다고 하셨다. 라살은 신시내티대 음악교수로 구성돼 있는 세계적인 4중주단이었다.

김 선생님은 우리의 연주를 녹음한 테이프를 신시내티대로 보냈고 우리 4중주단을 소개하는 영문 편지를 써주셨다. 우리가 막 고교 검정고시를 패스했을 때 설마 했던 일이 현실화됐다. 신시내티대는 우리의 입학을 허락했고 학비까지 면제해준다고 알려왔다. 미국에서의 생활비도 해결됐다. 신 교수님은 친분이 깊은 아산재단 장정자 이사님을 통해 유학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김 선생님은 미국에서도 2년간 자신의 공부를 잠시 미루고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우리를 뒷바라지해 주셨다. 이후 그는 한국에서 결혼한 뒤 미국으로 다시 오셔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셨다. 우리를 보면서 진로를 바꾸었다고 말씀하셨다. “어려운 상황인 데도 음악에 몰두해 있는 너희들을 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어.” 김 선생님은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에서 사역하고 계신다.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 나는 지금의 아내인 조성은과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다. 아내는 나를 지도해주신 고영일 선생님에게 비올라 레슨을 받았었다. 내가 대전에서 합숙하던 시절 아내를 처음 봤다. ‘행실이 바른 부잣집 딸’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아내가 경희대 음대로 진학한 뒤 한동안 볼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베데스다 4중주단이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아내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아내의 감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친구가 나에게 귀띔을 해줬다. “성은이가 오빠를 좋게 생각하는데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를 내 데이트 신청을 했다.

우리 둘은 사랑이 깊어졌지만 아내의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나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매일 아내를 그리워했다. 그러다 아내가 일을 저질렀다. 몰래 주변에서 돈을 빌려 비행기를 타고 나를 찾아온 것. 소심한 성은이가 가출을 하다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행복했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