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소련의 붕괴도 결국 국제유가 하락 때문이었다… ‘2030 에너지 전쟁’
입력 2013-01-31 17:08
2030 에너지 전쟁/대니얼 예긴/올
문명은 에너지를 먹고 자란다. 이 책은 인간의 경제활동에 불가결한 에너지에 대한 탐구 보고서다. 9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담았다. 벽돌처럼 두툼한 두께, 다소 건조한 책의 제목에 얼른 책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한 번 집어 들면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바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로서의 저력을 발휘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이 책은 에너지가 어떻게 세계를 바꾸어왔는지를 분석하고 또 어떻게 바꾸어갈지를 전망한다. 즉 에너지의 역사와 미래를 쓰는 이 방대한 지적 저작물의 첫 시작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의 하야 순간에 대한 소설 같은 묘사다.
“1991년 12월 25일 밤,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국영 TV에 나와 세상이 뒤집어질 발표를 했다. (중략)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무대 뒤의 희미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연설은 기껏해야 12분이었다. 그 뿐이었다. 공산주의는 70년의 수명을 끝으로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종언을 고했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천일야화’를 풀어놓듯 에너지가 글로벌 정치와 경제변화의 원동력이 되어가는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책장을 넘기면서 자주 감탄하게 되는 해박함과 통찰은 그의 전문성에서 기인할 것이다. 저자는 석유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재조명해 퓰리처상을 안겨준 ‘황금의 샘’(1992) 등 이미 다수의 에너지 관련 저서를 남긴 바 있다.
저자는 옛 소련의 붕괴를 이렇게 설명한다. 석유수출국인 덕분에 국제 유가 상승으로 연명했던 허약한 체제가 유가 하락이라는 치명타를 맞은 탓이라고. 미국의 실패한 개입으로 회자되는 이라크 전쟁도 에너지라는 창을 통해 본다. 전쟁 개입에서 전후 복구까지, 그 어느 과정에도 이라크 석유 자원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고 비난한다.
이처럼 인류가 20세기에 기댄 화석연료 석유는 국가의 흥망을 쥐락펴락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정책은 거꾸로 세계 석유시장을 좌지우지했다. 그런 석유가 고갈돼 간다는 불안은 21세기 벽두부터 인류를 지배했고 저자의 관심 역시 가스, 태양열, 풍력, 바이오 연료, 전기 등 대체에너지로 숨 가쁘게 이어진다.
모두가 가능성 없다는 셰일 암석에서 가스 추출 기술을 개발하고 상업화 노력을 기울였던 미국 휴스턴의 석유 가스 생산업자 조지 P. 미첼의 집념은 30년 뒤 북아메리카 천연가스 시장 판도를 바꾸었다. 전기를 발명한 건 에디슨이지만 과실은 따먹지 못했다. 그는 교류전기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전압이 낮아 멀리 가지 못하는 직류전기를 고집했다. 그가 설립한 전기회사는 결국 교류 전기회사 웨스팅하우스(GE의 전신)에 먹히고 말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배우 시절 연기는 못했지만 정치 수완은 좋았다. 덕분에 전기회사 GE의 홍보대사를 했고 이때 익힌 연설솜씨는 훗날 정치 자산이 됐다.
에너지 변천사를 풀어놓는 과정에선 이처럼 때로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가, 때로는 기업 흥망사가 펼쳐진다. 저자의 박학은 흥미 있는 역사의 이면을 들춰내기도 한다. 1970년 중반 석유금수조치의 충격 이후 대체 연료 개발에 박차를 가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풍력에 세금 우대정책을 폈고, 그 바람에 과거의 ‘골드 러시’에 못잖은 ‘윈드 러시’가 있었다. 요즘 대체에너지로 주목 받는 에탄올은 이미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자동차 연료 지위를 놓고 석유와 경쟁을 벌였지만 뜻하지 않게 금주법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브라질의 현재 자동차 연료는 휘발유가 아닌 에탄올이 주류다. 에너지에 얽힌 비사는 두꺼운 책을 술술 읽히게 하는 양념 같은 요소다.
방대한 저술임에도 이야기가 옆길로 새지 않는 것은 저자가 책을 쓸 때 던진 물음을 일관되게 견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우선, 세계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의 에너지가 있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며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 둘째, 세계의 운명이 달려 있는 에너지 시스템의 안전을 도모할 방법이 있는가? 셋째, 기후 변화를 포함해 환경적인 문제는 에너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반대로 에너지 개발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전기자동차와 바이오 연료는 과연 석유를 몰아낼 수 있을까?
저자와 같은 궁금증을 가져본 사람에게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돼 줄 것 같다. 에너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기업인, 에너지 안보와 주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정책입안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이경남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