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하늘 문 열다] 나로호 발사 성공 숨은 주역들… 좌절 딛고 10년 넘게 ‘한 우물’
입력 2013-01-30 22:03
나로호(KSLV-Ⅰ) 발사 성공이 있기까지 10여년 이상을 ‘한 우물을 판’ 연구원들이 있다.
이들은 두 차례 발사 실패로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묵묵히 한 길을 걸어 나로호 성공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주역들이다. 나로호 발사를 위해 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 150여명, 러시아 연구원 150명, 협력업체 직원 200명 등 총 500명의 실무진이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항우연의 조광래(53)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조 단장은 국내 최초 과학로켓인 ‘과학1호’, 액체추진 과학로켓(KSR-Ⅲ) 등 우리나라 우주산업 발전과 역사를 같이했다. 그는 2004년부터 나로호 상단의 킥모터(고체로켓) 개발을 위한 전담팀을 꾸렸고 발사추진단장을 맡아 발사를 진두지휘했다. 나로호 발사 성공 중압감에 최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아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기도 했다.
조 단장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반드시 국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 살아온 인생 전체를 걸고 준비했다”며 “우리 연구원들을 패잔병으로 만들지 않은 게 무엇보다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민경주(51) 나로우주센터장은 ‘나로호의 산증인’이다. 그는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가 우주센터 부지로 선정된 2000년 12월부터 나로호개발사업에 참여했으며 2006년부터 센터장을 맡아 외나로도를 지키고 있다.
민 센터장은 “시간과 예산이 정해진 상황에서 우주센터를 구축해야 했고, 발사대 만드는 과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장영순(51) 나로호발사체구조팀장은 대기업에서 4년간 전자제품 구조설계 일을 하다 2000년 항우연에 들어오면서 진로를 바꿨다. 우리나라 세 번째 인공위성인 ‘우리별 3호’ 개발의 주역이었던 장 팀장은 나로호의 상단 페어링(위성보호덮개) 분야 책임을 맡았다. 그래서 2009년 1차 발사 실패 원인으로 지목된 ‘페어링 미분리’ 때문에 한동안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지난해 8월부터 나로우주센터 내 숙소에서 지낸 장 팀장은 “이제 내 머릿속에는 온통 앞으로 개발할 순수 한국형 발사체뿐”이라고 말했다.
고흥=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