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신종수] 메르켈의 사죄와 리더십

입력 2013-01-30 19:02


유로존 위기에서도 유럽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독일. 경제나 복지제도뿐만 아니라 의식과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벤치마킹할 부분이 많다는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름 아닌 나치 범죄다.

과거 일본의 문물이 우리보다 앞섰지만 존경심을 갖고 배울 만한 부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처럼 아우슈비츠 학살을 저지른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역시 독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최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나치역사에 대한 반성을 접하면서였다.

“나치 범죄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되고 우리 독일인들은 어두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은 세대를 넘어 확실히 이어져야 한다. 당시 나치 범죄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불운하게도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나치의 범죄에 장님이 되기를 자처했다. 이 같은 어두운 역사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역사를 직시하고 어떤 것도 숨기거나 억누르려 해서는 안 된다.”

용서의 조건은 진정한 회개

그의 태도는 용서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단순한 사과나 반성 정도가 아니라 깊이 사죄하고 회개한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근래 역사에서 한 나라의 지도자가 공개적으로 이렇게 깊이 사죄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메르켈 총리는 2009년 9월 1일 폴란드에서 열린 2차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유럽 20개국 정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일이 시작한 전쟁은 수많은 유럽 시민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줬다”며 “희생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어 사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1970년 12월에는 빌리 브란트 당시 총리가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유대인 5만6000명이 학살당한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사과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일관된 회개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 신자인 메르켈 총리와 브란트 총리 모두 용서를 구하는 길은 회개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민주당 소속인 메르켈 총리의 경우 함부르크의 개신교 목사의 큰딸이다. 태어난 지 몇 주가 안 돼 그의 아버지는 동독으로 넘어갔다. 탄압받는 신자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동독에서 메르켈은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그 고난이 오늘의 메르켈 총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독일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화합·통합으로 새 역사 열어야

메르켈 총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

겸손한 마음에서 나온 사죄는 국제사회의 용서를 얻을 수밖에 없다. 회개는 마음을 돌이키고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 이런 점에서 회개는 사실 능력이다. 화합과 통합으로 요약되는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메르켈 총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사죄다운 사죄를 하지 않고 있는 일본을 비교한다.

마침 독일과 일본 두 나라가 요즘 환율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양국 모두 환율에 민감한 수출주도형 경제인데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무차별적인 엔저공세를 하고, 메르켈 총리가 이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새로 출범한 아베 정부나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메르켈 정부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승부로 보인다. 그러나 세계 여론은 이미 일본에 등을 돌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메르켈 총리를 언젠가 만날 것이다. 박 당선인이 메르켈 총리에게 배우고 참고할 만한 부분이 많을 것으로 본다.

신종수 산업부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