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여 주인공 전지현 “北비밀요원 아내이자 통역관역… 숨기고 절제하는 내공 보여줄것”

입력 2013-01-30 18:37


전지현(32)은 더 이상 샴푸와 청바지 모델로 소비되던 CF스타가 아니다.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은 ‘도둑들’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의 배우로서 롱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작에서 톡톡 튀는 거리낌 없는 매력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짐승처럼 펄떡거리는 남자들 사이에서 숨기고 절제하는 내공을 증명한다.

29일 서울 명동의 한 카페에서 전지현을 만났다. 이날 오후 5시 전야 개봉(정식 개봉일 전날 저녁 개봉)해 7시간 만에 13만여명의 관객을 모은 ‘베를린’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첩보 액션. 독일 수도 베를린을 배경으로 거대한 음모와 배신이 펼쳐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표적이 되고 숨 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전지현은 이 영화에서 북한 비밀요원 표종성(하정우)의 아내이자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의 통역관 련정희 역으로 나온다.

그 역을 빼고는 한석규 하정우 류승범 등 쟁쟁한 캐스팅이 이미 결정된 상황이었다. “류승완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고, 같이 작업할 배우들과의 작업이 기대됐어요.”

감독에게 선뜻 하겠다고 했을 때 돌아온 첫 마디는 “한 시대의 아이콘에게 이렇게 무거운 역할을 맡겨도 될까”였다. 그가 이 역할을 맡기로 한 뒤 감독은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했다. 련정희의 비중을 늘렸고 후반부를 서정적으로 고쳤다. 거친 액션 영화만 했던 류 감독이 처음으로 대중적인 감성 코드를 집어넣은 것이다.

“련정희는 외롭고 아픈 과거가 있어요. 남편에게조차 의심받는, 그런 종류의 외로움은 정말 견디기 어렵죠. 뭔가 메말라 있는 느낌이죠. 사물을 의미 없이 바라보는 허무한 눈빛 연기에 주력했어요.” 그래서일까. 촬영 현장에선 ‘도둑들’ 땐 전지현이 비주얼 담당, 이번엔 드라마 담당이라는 우스개도 돌았다.

북한 사투리는 탈북자에게서 직접 배웠다. “북한말을 직접 들었을 때 뭐랄까, 아픔의 역사 때문인지 멋지게 들렸어요. 그냥 입으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온몸 전체로 윙윙거리는 느낌이랄까요.”

액션영화이지만 그가 담당하는 액션 비중은 크지 않다. ‘도둑들’로 이미 액션 연기가 무르익은 터라 오히려 못하는 척 하는 게 힘들었다. 그는 “제가 총을 쏘는 장면에선 감독님이 ‘총만 들어도 간지난다’고 말리던데요”라며 웃었다.

전지현은 지난해 4월 결혼했다. 결혼은 그에게 여유와 자신감을 주었다. “결혼 후 진짜 제 인생을 사는 기분이에요. 부모님한테 독립해 가정을 꾸려가는 진짜 성인이 된 기분이죠.” 실제 결혼 생활이요?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남편은 일찍 나갔다가 늦게 들어와서 저 혼자 집에 있는 시간도 많아요.”

1999년 고교 시절 드라마 ‘해피투게더’로 얼굴을 알렸다. “어릴 적에 연기를 시작했죠. 체계적인 연기 공부도 안 했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형식에 얽매인 것도 없었고요. 자유롭게 편하게 하는 편이에요.”

전지현은 어느 순간 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오히려 두려웠다고 말했다. “제가 카메라에, 인터뷰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순간 무섭더라고요. 그 무렵 해외에 갔지요. 환경이 바뀌니까 그땐 전에 익숙했던 게 고맙게 느껴지던걸요. 상황은 늘 달라지는 거니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그는 “연기에 늘 만족할 수 없고, 완성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확실한 답을 찾긴 어렵다. 몰랐던 부분을 계속 배워가며 관객과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나온 전지현보다 앞으로 만날 그의 모습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