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튀어’의 주연 김윤석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탈 꿈꾸게 하면 제 역할 충분”

입력 2013-01-30 18:37


배우 김윤석(45)의 캐릭터는 크게 두 가지다. 영화 ‘타짜’(2006)의 무시무시한 아귀, ‘추격자’(2008)의 끈질긴 전직 형사, ‘도둑들’(2012)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카오박처럼 강렬한 배역이거나 ‘거북이 달린다’(2009)의 헐렁한 시골 형사, ‘완득이’(2011)의 오지랖 넓은 교사처럼 넉살 좋은 이미지이거나. 2월 6일 개봉하는 ‘남쪽으로 튀어’(감독 임순례)에서는 두 가지 다 보여준다.

28일 서울 태평로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평범한 이웃 남자처럼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가 맡은 극중 이름은 해갑(海甲)이다. “바다의 주인이라는 얘기죠. 세상 눈치 보지 않고 을(乙)이 아니라 갑(甲)으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엉뚱한 행동을 보고 돈키호테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현실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매력적인 주인공이랍니다.”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사회의 틀과 제도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386세대 최해갑이 고향인 남쪽 섬으로 가족과 함께 떠나 이상적인 삶을 실천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세금 고지서도 없고, CCTV도 없고, 대학 입시도 없는 곳에서 좌충우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다소 무모하기까지 하다.

초등학생 딸 둘을 둔 김윤석은 “실제로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오늘 애들 개학했는데 솔직히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하면서 갑갑한 세상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남들의 눈을 의식해 안달복달 매달리는 것들이 사실은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위로하는 영화거든요.”

출연작마다 히트를 친 그가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은 임순례(53)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김윤석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 전작들에서 보듯 음지에 있는 소소한 인물들에게 카메라를 갖다대는 감독님이 저랑 호흡이 딱 맞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어렵게 연극을 하던 시절의 고충을 잊지 않고 있기에 임 감독과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는 것.

김윤석은 문어체 대본을 구어체로 바꾸고 촬영장소 섭외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슈퍼마켓도 없고 냉방시설도 없는 섬에서 지난 7∼8월 여름 동안 촬영하느라 고생깨나 했단다.

“모기떼에 시달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 더워서 밥 먹는 것조차 귀찮았어요. 고생한 만큼 관객들이 ‘좋은 영화 한 편 봤다’고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시사회 반응이 좋아 기대가 됩니다.”

영화는 학교 가는 것, 세금 내는 것 등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 것들이 정말 꼭 그래야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는 “다들 살면서 한 번쯤 일탈을 꿈꾸잖아요. 경쟁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닷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한다면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죠. 사회 제도에 대한 얘기는 과자 부스러기 정도라고나 할까요.”

‘남쪽…’은 ‘황해’와 ‘도둑들’에서 각각 호흡을 맞춘 하정우와 전지현이 출연한 ‘베를린’보다 일주일 후 개봉된다. 류승룡 주연의 ‘7번방의 선물’이 절찬리에 상영 중이고,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가 나오는 ‘신세계’는 2월 21일 선보인다. 김윤석은 경쟁작에 대해 “다양한 장르의 한국영화가 나란히 개봉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그중 가장 따뜻한 곳은 역시 남쪽”이라며 웃었다. 15세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