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녹색기업 지정제’ 불산 누출 禍 불렀다… 삼성 화성공장 15년째 혜택
입력 2013-01-30 22:10
“녹색기업인데 왜 들어오느냐. 우리는 점검을 받지 않는다.”
오염물질을 기준치 이상 방류한다는 낌새를 채고 단속반이 수시점검에 나서면 ‘녹색기업’ 관계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환경부 관계자는 30일 “녹색기업으로 지정되면 지자체의 정기점검은 면제되지만 수시점검은 받아야 한다”며 “그럼에도 해당 기업이 점검을 거부해 갈등요인이 되곤 한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공장이 녹색기업에 지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녹색기업지정제도의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다. 녹색기업은 대기·수질 등의 오염물질과 온실가스 저감 등 환경개선 목표를 설정하고 ‘녹색경영’을 하는 기업에 정기 지도·점검을 면제해 주고, 배출시설 설치허가를 신고제로 대체해 주는 제도다. 그러나 정기점검 면제라는 인센티브가 법 집행의 예외라는 인식과 탈법 관행을 부추기는 것으로 지적된다.
실제 최근 3년간 남해화학 여수공장과 동양종합식품,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등은 녹색기업 지정이 취소됐다. 각각 폐기물, 폐수, 소음·진동의 관련 법령을 위반하거나 허용기준을 초과한 탓이다. 심지어 2009년 녹색기업으로 지정된 호남석유화학 여수공장은 지난해 8∼9월 환경부가 실시한 ‘특정수질유해물질’ 관리 실태조사 결과 벤젠·페놀 등 특정 수질 유해물질 7종을 배출한 것으로 적발됐다.
삼성전자 화성공장은 1998년 당시 환경친화기업(2010년부터 녹색기업)으로 지정된 후 지금까지 지자체의 지도·점검 면제 혜택을 누렸다. 이 사업장은 지난해 8월 녹색기업 재지정을 신청했지만. 배출되는 특정수질유해물질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오지 않아 결정이 보류된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불산 누출사고의 조사결과와 처분의 경중이 재지정 여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녹색기업 제도가 환경개선 실적보다는 녹색경영 투자계획에 중점을 두고 선정돼 환경오염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약속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매년 환경경영보고서를 통해 저감 및 개선실적을 점검받게 했으나, 최근 규제개혁에 따라 2009년부터 인터넷 정보공개로 대체됐다.
대기업에 편향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1995년 제도 도입 후 모두 207개 기업(사업장)이 녹색기업으로 지정됐지만, 중소기업은 8개에 불과하다. 환경부의 한 전직 간부는 “힘이 센 기업은 단속을 피하고 약한 기업만 단속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녹색기업에 대한 정기점검 면제혜택은 다른 인센티브로 대체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녹색기업 선정에 유해화학물질 관리의 평가항목 비중은 4.2%에 불과해 거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해당 기업이 보유 중인 발암물질이나 유독물에 대한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물질들이 공장 방류구를 통해 외부로 나가면 바로 특정수질유해물질이 된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