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신어야 할 신
입력 2013-01-30 18:14
누가복음 15장 22∼23절
오늘 본문을 보면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고 가락지를 끼워주며 신을 신겨 주었습니다. 여기서 신을 신겨준 의미는 무엇일까요.
신은 발을 보호하는 중요한 물품이고 신과 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신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늘 신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신을 벗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방에 들어갈 때, 잠잘 때, 발을 씻거나 목욕할 때 신을 벗는 것입니다.
영적 의미로 생각할 때에도 신은 벗어야 할 때가 있고 신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먼저 벗어야 할 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사명을 주실 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또 여호수아 5장 15절에 하나님께서 여리고성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누추한 신발을 벗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누추한 신발은 어떤 신발입니까? 불순종과 거역의 신발입니다. 로마서 10장 3절에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의를 세우려고 노력합니까? 이제 우리는 불순종의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의는 오직 이것뿐, 주님의 십자가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겁 없이 자기 멋대로 다니던 발걸음, 오만한 자의 자리, 불순종의 자리, 남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리를 향해 나아가던 신발을 과감하게 벗어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새로 신어야 할 신은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아들에게 새 신을 신겨주었습니다. 새 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종의 신분이 아들의 신분으로 바뀐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7절에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습니다.
탕자가 자신을 품꾼의 하나로 여겨 달라는 심정으로 돌아왔으나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며 기뻐했습니다(눅 15:24).
이제는 죄의 종이었던 자가 의의 종이 됨을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7∼18절에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새 신을 신음으로 새사람, 새로운 존재가 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롬 5:17).
의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엡 6:15)고 했습니다. 나아가 이 말씀은 새 신을 신고 새 역사를 창출해 가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3장 14절에 법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 신을 신고 새 역사를 창출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새 신을 신고 나아갈 때 길이 열리고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시 121:1∼6).
김송수 부총회장 (예장개혁·서울 동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