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보라매 띄우기
입력 2013-01-30 18:44
“지난 10년간 엇갈리는 주장을 들어왔던 우리로서는 이 결정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28일 자신이 주최한 ‘FX, KF-X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곤혹스러운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해할 만하다. ‘보라매 사업’으로 불리는 한국형전투기개발사업(KF-X)은 공군이 오래 사용해온 전투기 F-4와 F-5를 대체할 F-16급의 중급 전투기 100여대를 확보하는 사업이다. 2002년 제197차 합동참모회의에서 국내개발을 검토키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5차례 타당성 조사가 실시됐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분석결과가 달라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2003년과 2006년 타당성 분석조사에서 국내개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200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경제성은 없다고 봤다. 수조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돼야 하지만 활용 및 수출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2009년 건국대 무기체계연구소는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고 경제성도 있어 국내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개발에 우호적이었던 KIDA는 2012년 분석보고서에서는 기술도 부족하고 경제성도 없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국내개발파는 기술종속성 탈피를 위해서라도 국내개발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현대전에서 무기기술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앞선 기술을 가진 나라는 첨단 무기체계를 기반으로 단단한 군사력을 구축할 수 있다. 유사시 외부 공급이 제한될 상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그렇지 못한 나라는 주요 무기를 매번 해외에서 도입해야 하고 도입 무기 정비와 부품교체 시 어려움을 겪는다. 해외 무기도입 비중이 26%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제때 부품을 공급받지 못해 가동률이 뚝 떨어지기도 하고 정비과정에서 발생한 실수 때문에 남의 나라 기술을 훔치려 한 도둑이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또 훈련기 KT-1과 T-50, 경공격기 FA-50 등을 개발하면서 전투기 제작기술을 쌓아와 기술적으로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국산 공대공 미사일이나 공대지 미사일 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국외도입전투기는 무기체계와 규모 등이 달라 국산 무기를 장착할 수 없었다.
반대파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우선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이 든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해외구매보다 2배 정도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첨단 레이더 등 핵심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 기술을 빌려와야 한다는 것도 마뜩잖은 이유다. 팔 곳이 마땅치 않을 것도 우려된다. 오래 전투기를 개발해온 유럽 국가들도 자국산 제품을 제대로 팔지 못하는데 후발주자인 한국 전투기를 살 곳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개발할 수 있다, 없다’를 놓고 실랑이를 벌일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2020년이 되면 우리 전투기들이 상당수 현업에서 ‘퇴역’해야 한다. 빈자리를 메울 존재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사정이 급하니 실패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길보다는 안전한 길을 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안전만 추구하면 도약을 맛볼 기회는 적다. 첨단무기기술을 많이 보유한 이스라엘도 국산 전투기 ‘라비’를 개발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의미는 있었다. 이스라엘의 첨단기술개발 과정을 기술한 책 ‘창업국가’는 라비 프로그램은 이스라엘이 첨단 항공기를 독자개발할 수 있다는 정신적 돌파구를 열어줬고 인공위성을 성공시킨 8번째 나라가 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라비는 취소됐지만 이 프로그램에 들어간 수십억 달러는 이스라엘 항공기술을 한 단계 도약시켰고 첨단기술 붐을 촉발시켰다. 보라매 사업이 성공할지 라비의 전철처럼 실패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개발하려 했다는 의미만은 라비 못지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