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의리
입력 2013-01-30 18:44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바로 의리다. 원래 유교적 개념인 의리는 그러나 사회생활상이 변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신의를 지켜야 할 교제상의 도리나 남에 대한 자신의 체면 등의 개념으로 변했다는 말이다. 현대적 개념으로는 체면을 차린다는 쪽의 비중이 훨씬 높다.
원래는 고고한 선비들의 전유물인 이 덕목은 깡패 세계에서는 보스에 대한 충성을 말하는 의미로 뜻이 바뀌었다. 잊힐 것 같으면 등장하는 조직폭력배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 검은 정장을 입은 청년들이 90도로 절하는 모습에서 의리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전에 장례를 치른 전국구 조폭의 식장에서도 경찰은 비상경계를 섰다.
조폭이 의리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천적인 강력부 검사들의 얘기다. 돈으로 뭉치고 이해관계로 뭉치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소위 의리 있는 집단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쉽게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의리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이해관계일 뿐이라는 것.
일제가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105인 사건의 비화 한 토막. 평북 철산에서 맨 먼저 상투를 깎은 개화(開化) 목사님이 고을을 믿음의 고향으로 바꿨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건으로 꽁꽁 묶여 서울로 압송된 순간부터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고 한다. 형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큰길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단다.
광복군 장교 출신으로 항일전에 참가했던 장호강 시인의 ‘화랑영가(花郞靈歌)’에 나오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다. 신앙심이 적지 않았던 사람들도 일제의 탄압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였다.
최근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뒤 사퇴한 인사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말이 없으니 음해세력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과거에 부적절한 처사를 했으면 인사권자가 그 자리를 맡아 달라고 요구해도 거부하는 것이 선비의 도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리에 연연하니 탈이 났다.
모름지기 입신출세한 뒤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면 죽겠다(男兒立志出鄕關 志若不成死不歸)라는 각오로 평생을 살아왔다면 그깟 벼슬이 대순가. 본인이 자격이 없으면 스스로 거절하는 것이 도리다. 아무리 대기는 만성이라고 하지만 내가 한 일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는 바에야. 그래도 그는 마지막 자존심은 지켰다. 좀 머쓱하긴 하지만…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