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총리 후보 사퇴] 인사청문회 도입된 이후 네번째 낙마한 총리 후보

입력 2013-01-29 22:58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이후 네 번째 낙마한 총리 후보자로 기록되게 됐다. 하지만 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후보직을 사퇴한 사례는 김 후보자가 유일하다.

총리 후보자로 제일 먼저 낙마한 사례는 국민의 정부 때인 2002년 7월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한동 총리를 교체하며 장상 이화여대 총장을 총리서리로 지명했다.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 후보였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세 차례의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 장남의 이중국적 문제 등이 불거졌다. 장 총리서리는 “모든 것을 시어머니가 주관했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여론의 질타만 불러왔다. 장 총리서리는 청문회를 마친 뒤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상정됐지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반대로 동의안이 부결돼 결국 ‘서리’ 딱지를 떼지 못했다.

두 번째 낙마가 이어졌다. 장상 총리서리가 물러난 뒤 한 달 후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이 총리서리로 임명됐지만 10여건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자녀의 강남 위장전입 의혹이 터졌다. 장대환 총리서리는 “애들을 좋은 곳에서 교육시키려 했던 생각에서 한 일”이라고 시인했지만 역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초대 총리인 김종필(JP) 전 총리는 나중에 총리로 임명은 됐으나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해 98년 3∼8월 167일 동안 ‘서리’ 딱지를 떼지 못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이헌재 경제부총리, 김병준 교육부총리, 김명곤 문화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다수 불명예 퇴진했으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사례는 없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인 2010년 8월 ‘40대 총리론’을 내세운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결국 도중에 사퇴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 후임으로 김 전 지사를 깜짝 카드로 꺼내들었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관련된 말 바꾸기 의혹 등이 확산됐다.

결국 청문회를 마친 4일 뒤 자진 사퇴했다. 김 전 지사는 “국민의 믿음과 신뢰가 없으면 총리로 인준된다 하더라도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물러났다.

현 정부 하에서는 총리 후보자는 아니지만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처럼 청문회 전에 낙마한 사례가 한 번 더 있다. 2011년 1월 감사원장으로 내정됐던 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명된 지 12일 만에 경력과 재산문제 등으로 자진 사퇴했다. 정 전 수석은 “청문회 없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재판 없이 사형 선고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