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독일이라는 窓

입력 2013-01-29 17:58


우리나라에서 하계올림픽을 치른 다음 해 9월 독일로 유학을 갔다. 개인적으로는 해외생활은 처음이었고 삶의 여정에서 큰 변화였다. 독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광부나 간호사로 취업을 나간 곳이어서 여러 지역에 교민사회가 형성돼 있다. 해외에 나가 새로운 자아 인식을 경험했다. 나라는 존재 그리고 내 나라, 내 민족, 내 상황을 밖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말이다. 독일에서 경험한 일 가운데 지금도 고마운 것이 많다. 독일의 사회복지와 연관된 경험이 그중 하나다.

대학은 학비가 아예 없다. 한 학기에 학생회비 몇 만원만 내면 다른 비용은 아무것도 없다. 독일로 유학간 이유 중 하나가 학비가 없다는 것이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하면 대학을 공짜로 다닌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미국, 영국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을 때가 특히 그랬다.

사회복지 정착에 성공한 나라

아이를 기르는 데 국가에서 보조비가 나왔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저런 사회복지 재정이 집행된다. 1980년대 후반엔 그런 게 거의 없었다. 아이 셋에 누진적으로 자녀양육비를 받았다. 첫째에게 50마르크, 둘째는 70마르크, 셋째는 120마르크였다. 감격했다. ‘세상에 이런 나라도 다 있구나. 내 아이 기르는 데 국가에서 돈을 주다니, 더구나 외국 사람에게까지!’

집과 연관된 돈도 받았다. 수입이 일정 이하면 집세를 보조해 주었다. 독일이란 나라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유학생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데 독일 정부가 주는 자녀양육비와 집세보조금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 생각했다. 독일에서 받는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말이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되면 독일이라는 나라에 갚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내가 독일에 있던 기간 중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되었다. 독일 정부에서는 동독 지역을 복구하려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했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기 얼마 전부터 외국인에게는 집세보조금이 중단되었다. 사람 심리가 묘하다. ‘공돈’을 독일에서 받으면서 감격했는데, 돈이 끊기니까 금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내 돈 안 줘.’

세계경제가 조정기를 거치면서 나라마다 쉽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가 오늘날 세계가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구조가 아니라는 데 이견이 없다. 시장개방과 자유경쟁을 통해 경제규모를 키워간다는 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신자유주의가 실패한 이유를 신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사람의 끝없는 욕심’이라는 요인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의 타락과 그에 따른 부패성이 그 욕심의 핵심이다. 이걸 제어하고 바로잡아주는 사회적 장치가 복지다.

그 경험을 우리 미래에 활용하길

오늘날 세계에서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은 이런 방향과 연관해 성공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이 중 북유럽 국가의 사회복지는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훨씬 강하다. 우리가 벤치마킹하기에는 사회구조와 역사에서 볼 때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이에 비해 독일은 우리가 참고하기에 적절한 점이 많다.

독일은 우리에게 창(窓)일 수 있다. 독일이 먼저 걸어간 경험을 통해서 우리 미래를 내다볼 창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독일어 문화권에 연관된 사람이 많다. 영어를 갖고 독일을 보는 것보다 독일어로 독일을 보는 게 당연한 얘기지만 훨씬 정확하고 깊다. 교민사회를 비롯해 독일 경험을 가진 다양한 자원을 모아 총체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독일을 통해서 유럽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독일 사례를 주목하고 있는 터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