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권력형 비리를 손쉽게 선처해 준다면

입력 2013-01-29 21:25

다음 달 퇴임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초 의지대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그는 정부 출범 때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고, 재임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원칙에 입각한 사면이라고 말했다. 사면권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긴 하지만 원칙대로 한 일이라는 데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권력을 남용했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실제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임 대통령들도 임기 말에 권부 주변 인사들을 대거 사면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면권 행사 자체가 국가형벌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기를 불문하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법을 잘 지키며 선량하게 사는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엄청난 박탈감과 상실감을 주는 사면은 사실상 초헌법적 권리다.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오로지 국민화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예외적으로 단행해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역대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하나같이 합리성을 결여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다.

이번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면권 행사라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이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이다. 두 사람은 권력형 비리의 상징처럼 부각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옛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연루됐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돈봉투 전달자로 지목된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포함된 것도 마뜩잖다.

물론 서울 용산 참사 관련 철거민들의 잔형을 면제해 주고, 친박계의 대표적 인물인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를 복권해 준 것 때문에 전적으로 측근을 위한 사면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사청탁 등과 관련해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됐던 인사를 사면하는 등 10여명의 경제인에 대한 사면이 정당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 재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등 개인적 욕심 없이 미국 발 금융위기를 비교적 빨리 극복한 이 대통령의 공을 모르지 않는다. 또 재임 중 굵직한 국제회의를 유치해 국격을 높인 그의 열정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렇지만 이번 사면권 행사는 본인의 이 같은 충정과는 무관하게 임기 마지막에 흠을 남긴 것 같아 아쉽기 짝이 없다.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헌법적 권한을 가벼이 사용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 대통령의 이번 처신을 새로 대통령에 취임할 박근혜 당선자가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한다는 점이다. 법치의 실종과 사회정의의 좌절을 몰고 올 비리전력자에 대한 선처는 명분이야 어떻든 가능하면 자제돼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