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용서,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입력 2013-01-29 21:20


요한복음 7장 53절∼ 8장 11절

시간의 흐름 속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색은 바래고 형태는 변합니다. 의도와 목적이 상실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한 뒤 처음 예루살렘에 올라 보게 된 성전이 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어져야 할 아버지의 집이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에 대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간음한 여인에 대한 율법의 적용문제를 가지고 시험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4∼5절)라고 묻습니다. 이는 곧 주님의 가르침에 대한 권위를 훼손하고, 또한 고발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율법으로 시험하고 정죄하려는 그들에게 주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율법은 심판이 아니라, 죄인들에 대한 부르심과 용서이며, 하나님의 뜻은 구원에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의롭다 여기심으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받은 것처럼 용서하는 삶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 생명의 빛을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용서는 생명력 있는 유기적 관계를 만듭니다. 현재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비판하고 규정을 강화하지만, 경직되고 틈이 벌어집니다. 오히려 용서와 관용은 벌어진 틈을 메우고 더욱 잘 맞물려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음에도 용서를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다른 사람을 향한 비판의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통해 누군가를 향한 시험과 정죄의 도구로 사용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그 율법에 따라 점검하라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7절).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빌 2:5). 이는 낮아지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용서와 화해를 가져옵니다. 속옷을 달라면 겉옷을 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우리는 평화의 도구로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11절)고 명하십니다. 주님의 용서는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죄로부터 단절된 삶이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 수 있겠습니까?’(롬 6:2)라는 바울의 물음이 곧 용서와 더불어 죄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평양대부흥 운동을 통해 나타난 회개와 변화를 우리는 경험했고, 그것이 한국교회를 일궈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 죄로부터의 단절이 우리 시대 새로운 소망을 낳기를 소원합니다.

한 해가 시작되었고,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사랑과 용서가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실천되도록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 변화와 구원이 한국교회의 가정과 사회적인 문제에 빛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세웅 부총회장 (예성·서울 신림동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