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조국 경제부흥 밀알되고 韓·獨 친선의 가교 되다

입력 2013-01-28 14:16


1966년 1월 31일 오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당시 25세이던 이혜성(72)씨를 포함한 간호사 128명이 비행기에서 내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꽃다운 20대 간호사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도착한 낯선 땅 독일. 기대와 긴장이 교차하며 침묵이 흘렀다.

며칠 만에 병원에 투입된 이들은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악착같이 일했다. 번 돈은 쌀을 사고 김치 담글 돈만 남겨놓고 거의 전액을 가족들 생활비로 보냈다. 당시 우수한 간호사 위주로 선발된 이들은 한국 여성 특유의 성실함과 섬세함, 친절함으로 6개월도 채 안돼 독일 병원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의사, 환자 할 것 없이 한국 간호사를 찾았다. 중요한 수술을 앞둔 의사들은 탁월하게 손이 빠르고 호흡을 잘 맞춰주는 한국 간호사를 찾았다. ‘언제 놨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놓는다’는 소문이 퍼져 한국 간호사들에게 주사를 맞겠다는 환자들이 줄을 섰다.

혈혈단신 이국땅으로 건너간 이들 128명을 시작으로 70년대 중반까지 1만여명의 간호사가 독일에 진출했다.

파독 간호사들이 고국에 송금한 봉급은 우리나라 경제부흥의 불씨가 됐다. 2008년 9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에 송금한 외화가 약 1억153만 달러였다고 밝혔다. 연평균 1000만 달러 수준으로 1965∼1967년 사이 송금액 규모는 당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6∼1.9%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파독 간호사들은 고국에 돈을 보내는 것은 물론 민간 사절단 역할도 했다. 한국 간호사들의 태도는 독일인들에게 긍정적인 한국인상(像)을 형성시키는 데 기여했다.

클라우스 폴러스 전 주한 독일 대사는 “독일과 한국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는 한국 출신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파견되면서 비롯됐다”며 “독일인들은 파독 간호사들을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과 독일 간에 끊어질 수 없는 유대관계가 맺어졌다”고 말했다.

낯선 나라에서 만난 광부와 간호사들이 결혼하는 사례도 많았다. 가난에 허덕이고 해외 진출이 막혀 있던 당시 독일 진출은 기대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이 이들의 증언이다.

마인츠대학병원에 의사로 근무하며 간호사 독일 취업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이수길 박사는 “과거에는 한국하면 6·25전쟁만 떠올렸던 독일 사람들이 한국하면 간호사를 먼저 얘기하게 된 것은 파독 간호사들이 민관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파독 간호사 중에는 우수한 인재가 많았는데 나중에 공부해서 독일 외교관, 교수, 의사, 화가, 시인 등 자신의 꿈을 이룬 이들도 많다”고 소개했다.

마인츠=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