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美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민간인 학살 제주 4·3사건 다뤄

입력 2013-01-27 23:06


오멸(42) 감독의 한국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가 세계 최고 권위의 독립영화 축제인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감자라는 뜻의 제주 방언인 ‘지슬’은 미군정 하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인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한국영화가 이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지슬’은 26일(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제2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극영화(드라마틱)’ 부문의 심사위원대상(Grand Jury Prize)을 받았다. 선댄스영화제는 초청작을 자국인 미국 영화와 외국 영화(월드시네마)로 나누고 다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부문을 나눠 4개 부문에서 상을 준다. 심사위원대상은 각 부문 최고 작품에 주는 상이다.

제작사 자파리필름 측은 “‘지슬’의 대상 수상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이뤄졌으며, 결정하는 데에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전에는 2004년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특별상에 해당하는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한 것이 유일하다.

선댄스영화제 측은 “전쟁의 불합리성을 그린 영화는 많지만, 이렇게 절묘한 디테일로 그린 작품은 드물다. 강렬한 흑백의 영상은 인물들의 인간성뿐 아니라 이 지역의 결까지 담아낸다”고 평했다. 미국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상당히 형식적인 아름다움과 감정의 절제를 보여준다”며 “특히 시각적으로 숨 막힐 듯 아름답다”고 평했다. 제주도 출신의 오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섬사람들의 통증을 이야기한 영화이다 보니 그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영혼들과 함께 이 상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지슬’은 1948년 겨울 제주에 ‘해안선 5㎞ 밖의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미군정의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흑백영화로 그렸다.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은 참혹하지만, 산속 동굴에 숨어 감자를 나눠 먹으며 집에 두고 온 돼지 걱정을 하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려졌다. 오 감독과 제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이 2억5000만원이라는 작은 예산으로 만든 ‘지슬’은 잊혀져가는 4·3사건을 65년 만에 전 세계에 알리게 됐다.

‘지슬’은 3월 1일 제주에서 먼저 개봉한 후 3월 21일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넷팩상,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CGV 무비꼴라쥬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선댄스영화제는 할리우드의 영화배우 겸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의 후원으로 시작된 독립영화제로 1985년 공식 출범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