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법해석 권한두고 갈등 재연되나… 헌재 준공무원 뇌물죄 결정에 대법 “3심제 근간 흔들어” 반격
입력 2013-01-27 18:56
최근 ‘준공무원의 뇌물죄 처벌’에 대한 대법원의 법률해석을 ‘한정위헌’이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일선 판사들이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법률해석의 최종 권한을 두고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여 온 대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대법원 헌법연구회(회장 유남석 서울북부지법원장)와 형사법연구회(회장 노태악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는 지난 24일 지난해 말 헌재가 내린 이 같은 결정을 두고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27일 밝혔다. 대법원 중회의실에서 열린 세미나에는 법관 60여명이 참석했다. 서로 다른 대법원 연구회가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처음이며, 헌재 결정이 세미나의 대상이 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제주도 재해영향평가심의위원 재직 중 뇌물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남모(55) 교수가 “공무원이 아닌데도 뇌물죄가 적용됐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사실상 대법원의 판단에 반하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결정은 법률조항의 위헌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법률을 해석한 기준에 대해 위헌 여부를 따지는 결정이었다. 당시 법원 관계자들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법원이 구속될 필요없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때문에 이번 공동 세미나는 헌재 결정에 대한 법리적 차원의 문제제기인 셈이다. 세미나 발표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김상환 부장판사(47·사법연수원 20기)는 “헌재의 해당 결정은 재판을 담당한 법원의 법률조항 해석 자체를 직접 심판한 것”이라며 “헌재가 실질적으로 법원의 사법작용을 통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의 해석 자체에 대한 헌재의 통제가 실현된다면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헌법의 심급제도가 사실상 무너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헌법은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대법원으로 이어지는 3심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재판소원(법원의 재판을 헌재가 심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기속력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헌재 결정 자체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왔다. 같은 법원 천대엽 부장판사(49·연수원 21기)는 “공무원 외에 국가나 지자체가 위촉한 각종 위원과 같은 공무를 담당하는 사인(私人)도 뇌물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형법 및 행정법의 학설과 판례가 전통적으로 취해 온 입장이고, 주요 외국의 경우에도 이를 당연시해 왔다”며 “헌재의 결정은 합헌적 해석으로 처벌이 가능한 범죄인의 무사방면 및 법 경시 풍조를 조장할 우려가 높다”고 비판했다.
헌재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헌재 관계자는 “법원의 공식 입장도 아니고 연구모임에서 나온 의견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