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미래 가난’ 선제적 대응… 노인 빈곤율 세계 최저

입력 2013-01-27 16:19


독일의 노인 빈곤율은 2.4%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100명 중 2명 정도만 빈곤노인이라는 뜻이다. 독일의 노년이 여유로운 이유는 젊어서 노후대비를 하도록 국민연금제도가 잘 짜여진 덕분이다. 국민연금이라면 한국에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인은 2명 중 1명꼴(빈곤율 45%)로 가난하다. 같은 제도를 운영하면서 독일과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왜 20배까지 차이가 나는 걸까.

◇독일식 예방 복지=연금은 ‘현재’ 가난한 빈곤층의 ‘미래’를 구제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빈곤층은 보험료를 부담할 여력이 없다. 노후대비가 불가능한 연금의 사각지대다. 그렇게 현재의 가난은 미래 빈곤으로 이어진다. 길은 여기서 갈라진다. 정부가 가난한 젊은층을 방치하면 노후빈곤은 늘고, 도우면 미래 빈곤은 선제적으로 해결된다. 독일은 도왔고, 우리는 방치했다. 차이는 이것이다.

2009년 현재 독일 전체 생산인구 5110만명 중 68.7%(3513만명)가 국민연금제도에 가입해 있다. 공무원, 자영자, 농부 등을 위한 공제조합을 포함하면 공적 연금제도의 가입률은 93%까지 높아진다. 독일인 대다수가 ‘1인 1연금’의 우산 아래 있다는 뜻이다. 2007년 현재 독일의 만 65세 이상 노인 부부가구의 소득원 중 53%가 국민연금, 기타 연금이 37%, 근로소득이 10% 정도를 담당한다.

독일 연금의 가입률이 이처럼 높은 비결은 보험료를 정부가 대납하는 크레디트 제도에 있다. 독일에서는 육아를 위해 쉬는 노동자의 보험료를 3년간 국가가 전액 지원한다. 직장을 잃거나(실업급여), 아파서 쉴 때(상병급여), 일찍 은퇴해도(조기퇴직급여)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인정받는다. 또 병역을 수행하거나 주당 14시간 이상 장애인과 노인을 수발한 경우에도 역시 정부가 보험료를 대신 내준다. 특히 간병 크레디트는 자립이 불가능한 가족을 수발하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결과적으로 빈곤층이 되는 이들을 돕는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예방 복지제도로 꼽힌다.

반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높은 이유는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역사가 짧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기형적으로 넓은 사각지대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자는 약 1500만명으로 경제활동인구(2500만명)의 60%에 그친다.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 3000만명(18∼59세 인구)을 기준으로 하면 절반 정도가 연금제도 밖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후보장의 기초인 국민연금에서 배제된 나머지 40∼50%에게 노년의 빈곤은 예약돼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구실장은 “독일은 크레디트 제도를 통해 육아와 수발, 실업기간 동안 보험료를 정부가 대납해주기 때문에 제도의 구멍이 작다”며 “한국은 큰 틀의 제도는 있는데 세부장치들이 미흡해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탈락자 없는 그물망 복지=한국에서는 부모를 간병하다 몸을 다쳤다고 해도 산재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프리랜서 작가나 농·어민도 마찬가지다. 별도의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한 작업 중 다치면 당장 생계가 어려워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7%(약 1400만명)만이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재해보험(한국의 산재보험)의 대상자가 된다. 생계를 목적으로 일하는 농·어민, 헌혈자, 장기기증자, 직업교육생, 견습생, 보험중개인, 프리랜서 예술가, 자동차 딜러, 가족 간병인. 모두 재해보험의 당연가입자들이다. 심지어 작업장의 유해 환경이 임신부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다면 태어나는 아기도 재해보험의 보호를 받는다. 지원 규모의 차이가 크다. 독일에서 재해를 당한 노동자는 치료비나 장애로 인한 보상금만 받는 게 아니다. 직업교육비, 간호비, 구직활동비 등 직장에 복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 전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 보장기간은 최장 2년이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