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열정적으로 사는 게 특별한 삶이죠… 첫 자서전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낸 발레리나 강수진

입력 2013-01-27 18:14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가냘픈 몸매.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46)은 멀리서도 눈에 확 띄었다.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하는 모습에선 ‘오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그의 신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만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입단해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그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첫 자서전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인플루엔셜) 출간에 맞춰서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강씨를 만났다. ‘장한 남편상’이 있으면 주고 싶다는 그의 남편 툰치 소크맨이 매니저 분위기로 든든하게 옆자리를 지켰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출신의 터키인이다.

#강수진은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최연소, 최초, 최고의 수식어를 달고 산 그이기에 자서전 출간 권유는 수없이 받았을 터. 이번에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타이밍이 맞았던 것 같다. 살아보니 발레나 인생이나 똑같더라. 부족하지만 경험을 풀어놓고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하고 싶었다. 누구나 특별한 삶을 꿈꾸지만 사실 특별한 삶은 없다. 보통의 삶을 특별한 열정으로 살면 그게 특별한 삶이 된다”고 말했다.

제목의 뜻을 묻자 “하루하루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게으름 때문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그러다보면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 강씨는 그날 할 수 있는 만큼의 계획을 세워 이를 철저하게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작하기도 버거운 무리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날 해낼 수 있는 실질적인 계획을 세우라는 것.

“전날 운동기구 트램펄린에서 20분 동안 2000번을 뛰었지요. 오늘은 21분을 목표로 잡아요.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연습량이기에 단 1분을 더 해냈을 때의 쾌감은 정말 말도 못하지요.”

#인생 최대 위기는 부상, 그리고 극복

서른두 살이던 1999년, 전성기였던 그때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최소한 1년은 발레를 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발레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 “처음엔 걸을 수도 없었고, 통증이 심해 잠을 잘 수도 없었죠. 남편이 아무리 위로를 해줘도 그 소리가 귀에 안 들어왔지요.”

9개월 지나 뼈가 약간 붙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1년을 쉰 뒤 처음 연습실에 나갔을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중학교 시절 남들보다 늦게 처음 발레를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실망도 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끔찍했지요. 그런데 또 되더라고요.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레를 하고 있는 거죠. 당시는 발레리나로서 전성기였지만 정신적 피로가 겹쳐 한계가 왔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쉬길 잘 한 것 같아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든든한 남편

19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 86년 세계 5대 발레단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으니 30년 이상 유럽을 본거지로 활동했다. 공연 때문에 수차례 공항을 드나들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여권을 갖고 있다. “한 번도 독일 여권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유럽 여권이 있으면 입출국 때 편하긴 하지만 (바꾸는 건) 말도 안 되죠. 여권은 하나의 종이가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들어있는 상징이니까요.”

한국발레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한국 발레, 정말 잘 해요. 다른 나라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세계적인 수준이지요. 지금처럼 그대로 계속 간다면 미래가 굉장히 밝을 겁니다.”

요즘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완벽한 하루를 준비하는 그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은 남편 툰치다. “우리는 서로에게 ‘잘 생겼어’ ‘예뻐’라는 칭찬을 자주 해요. 늘 대화 소재가 끊이지 않고 얘기를 많이 하고요. 하지만 각자의 일이 있으면 정확하게 그 일을 존중해주고 자유시간을 줍니다. 완전히 다른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려면 서로를 존중해야만 하지요.”

툰치는 허리 디스크가 있어 오래 앉아 있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런 툰치에게 사랑이란? 그는 책에서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옆에서 3시간 앉아 있어 주는 거”라고 답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