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올 시즌 SK돌풍 선봉장 문경은 감독 “나의 사전에 모래알은 없다”
입력 2013-01-27 23:29
올 시즌 프로농구를 앞두고 전문가 중 누구도 서울 SK의 선두 질주를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SK는 지난 10시즌 동안 6강 플레이오프에 단 한 번 밖에 진출하지 못했고, 지난 시즌에도 10개 팀 중 9위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멤버를 지녔음에도 ‘모래알 조직력’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혹평도 따랐다. 그런 SK가 올 시즌 달라졌다.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SK는 2위 울산 모비스에 4게임차나 앞선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런 SK를 만든 사람은 바로 문경은 감독이다. 선수 시절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탤론을 닮은데다 폭발적인 3점포를 뽐내 ‘람보슈터’라는 닉네임을 가졌던 문 감독은 이제 ‘문수(文手)’라는 별명을 얻었다. 코트에서 만 가지의 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만수’ 유재학 감독과 비견된다는 뜻이다. SK 돌풍을 이끌고 있는 문 감독을 18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만났다.
-올 시즌 첫 정식감독으로 된 이후 팀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선수들을 잡은 비결은 무엇인가.
“내가 SK에서 오래 선수생활을 한 만큼 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즌을 앞두고 메모를 했다. 일례로 ‘김민수는 게으르다. 골밑에서 몸싸움을 싫어한다.’ ‘주희정은 스피드는 좋지만 수비를 등한시한다’는 방식이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이런 것을 고치지 않으면 감독으로서 시합에 뛰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수들이 잘 따라 오던가.
“그래서 형님 리더십이 필요했다. 친한 형님처럼 다가가 선수들이 훈련을 해야하는 이유를 찬찬히 설명했다. 또 채찍도 필요했다. 그래서 화려한 플레이만 좋아하고 수비를 잘 하지 않는 선수들한테는 이렇게 말했다. ‘너가 나보다 유명하냐. 나도 인기가 많았지만 수비할 때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본 마음자세가 안돼있다’고 다그쳤다.”
-선수와 감독 중 하나를 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선수로서 코트에서 뛰는 것이 매력있고 보람도 크지만 감독은 또 다른 세계다. 선수들을 가르치고, 전술 훈련을 해서 생각한 대로 잘 돼 경기에서 승리하면 쾌감은 선수 때 이상이다. 경기를 준비하고 선수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보람차다. 만약 이번에 우승을 하게 된다면 펄펄 뛰고 울 것이다.”
-김선형, 최부경, 변기훈의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감독이 된 후 일단 팀을 젊게 바꿔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우리 팀을 휘감고 있는 모래알 조직력, 끈기 부족과 같은 말이 사라질 것 같았다. 우리 팀은 매번 단기간에 성적을 낼려고 트레이드를 자주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SK가 우리 팀이라는 것을 선수들에게 심어줘야 했다. 그래서 이 세 선수들을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워서 가야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래서 더 훈련을 많이 시켰다. 때로는 본인이 듣기 힘든 말도 많이하면서 다그쳤다.”
-농구에서 정통 슈터가 사라졌다. 문 감독의 뒤를 이을 만한 선수는 없는가.
“그 원인은 바로 외국인 선수 두 명 보유에 두 명 다 출전이 가능하도록 했던 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제도가 10년 정도 이어졌다. 그렇다보니 확률 낮은 외곽슛보다는 득점력 높은 용병 두 명과 이들에게 공을 공급하는 가드가 있으면 충분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공격형 포워드보다는 이병석, 김기만 등 수비형 포워드들이 생겨났다. 전문 슈터들이 사라진 것이다. 정통 슈터 계보는 나를 끝으로 사라졌다. 아쉽다.”
-여전히 인기가 많다. 기억에 남는 팬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경기 마치고 인터뷰 할 때 항상 인터뷰 실 앞서 30대 초중반 여성팬 3명이 커피를 놓고 기다리고 있다. 또 우피라는 팬클럽도 소중하다.”
-끝으로 SK 팬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시즌 전에 팬들에게 ‘홈 경기장에 오시면 실망 안시켜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팀에 이제 더 이상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불명예는 없다. 항상 홈 구장에 오시면 최선을 다해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이해 드리겠다. 앞으로도 계속 SK는 진화하고, 강팀으로서 우승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많이 찾아주시면 감사하겠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