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2부) 5년, 새 정부의 과제] “獨경제 비결은 견고한 복지시스템”
입력 2013-01-27 16:19
⑥ 생산성 높이는 복지
[인터뷰] 크리스토프 폴만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한국사무소장
복지와 성장. 유럽이 재정위기로 휘청댄 지난 몇 년 독일은 두 가지를 함께 성취한 유럽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실업률은 낮고, 수출은 호조를 보였으며, 사회 안전망은 견고했다. 크리스토프 폴만(Christoph Pohlmann·사진)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한국사무소장은 유럽의 위기 속에서 빛났던 독일의 힘을 ‘생산적인 복지의 힘’으로 평가했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은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SPD)의 싱크탱크로, 집권 여당 기독민주당(CDU)이 지원하는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과 함께 독일의 대표적 비영리 정치재단이다. 세계 100여 곳에 사무소를 두고 독일과 관련한 각종 학술세미나와 국제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베를린자유대학, 워싱턴대학 등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폴만 소장은 2010년 한국사무소장에 취임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율곡로 재단 사무소에서 진행됐다.
-유럽이 고전하는 동안 독일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차이는 무엇인가.
“유럽 전체가 실패한 게 아니다. 그걸 꼭 지적하고 싶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일부 국가들의 실패였고, 원인 역시 복지제도의 몰락이 아니었다. 관료의 부패와 높은 임금, 허약한 제조업 토대, 신흥시장 진출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유럽 위기가 심각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복지와 경제발전을 함께 이룬 유럽의 성취를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독일의 성공은 두드러졌다.
“탄탄한 제조업 토대와 기술발전의 오랜 전통이 첫 번째 힘이다. 유럽통합도 기회가 됐다.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유로존 통합 후 관세장벽 등이 철폐되면서 독일은 최대 수혜자가 됐다. 독일 수출의 약 40%는 유로존으로 간다. 23년이 된 동·서독 통합의 덕도 컸다. 무엇보다 복지시스템이 견고하게 잘 작동돼 왔다는 게 중요하다.”
-복지는 비용인데 그게 성장의 동력이 됐다는 뜻인가.
“복지는 가난하거나 아픈 이들을 돌봐서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모델이다. 21세기 복지는 예방적, 능동적 복지로 진화하고 있다. 복지를 통해 사회는 노동자를 교육하고 지원해 생산성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다. 생산적인 경제는 복지의 재원을 확보하고, 다시 복지는 경제의 생산성을 높여준다. 복지를 비용으로만 간주하는 건 퇴보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위험하다. 또 복지는 노동과 자본 간 평화를 가능하게 한다. 독일과 네덜란드, 북유럽을 보라. 복지 덕에 노동과 자본은 오랫동안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복지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없었나.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좌우를 넘어 모든 정당과 노조, 재계까지 동의한 사회적 합의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독일이 시장경제와 복지국가를 함께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이를테면 독일 내에는 ‘누구도 빈곤 속에 살아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이게 독일이 한국과 다른 점이다. 한국에서는 매우 기본적인 이슈를 두고 극심한 갈등이 빚어진다. 물론 독일에서도 복지 수준에 대한 정치적 논란은 언제나 있어 왔다. 곧 다가올 선거에서는 특히 부자증세, 실업급여 수준 등을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것이다.”
-중도좌파 독일사회민주당(SPD)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어젠다 2010’을 통해 복지에 경쟁을 도입하는 우파 개혁을 시도해 성공했다.
“흔히 진보적 정책을 위해 진보적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복지를 확대하려고 할 때 한국에 필요한 건 보수 정부일지 모른다(웃음). 복지를 늘리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어떤 측면에서 보수 정부가 유리할 수 있다. 슈뢰더의 SPD는 우파 개혁을 하면서 잃은 게 많았다. 핵심 지지층이 좌파정당으로 이탈하면서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덕분에 독일 복지제도는 좀더 효율적으로 개편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복지를 늘리려면 재벌 오너 같은 복지 확대의 반대세력을 설득해야 한다. 보수 정부의 역할이 있을 거다.”
-독일에서 태어났고 미국, 한국, 남아공에서 장기 체류한 경험이 있다. 각국 복지를 비교하자면.
“미국, 한국 등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독일이 가장 발전한 복지국가인 건 사실인 듯하다. 독일인들은 삶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다고 느낀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독일의 정교한 복지 시스템을 행운으로 여기게 됐고 안도했다. 물론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도 독일에는 직장을 잃거나 몸이 아플 때, 장애로 일할 수 없을 때 누군가 나를 보살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 신뢰는 삶을 한결 안전하게 만들어준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