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차인홍 (5) 첫 콩쿠르 출전… 주님은 재활원 학생에게 1등을

입력 2013-01-27 17:29


스승인 강민자 선생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난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2시간 넘게 앉아서 연습하다 보면 허리가 쑤셔올 때도 있었지만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리기 싫었다.

간혹 “연주인으로서 이름을 날리려고 바이올린에 그렇게 매달린 것 아니냐” “부모님이 연습을 강요하지는 않으셨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좋아서 열심히 하다보니 실력이 늘었고 이후 진로도 물 흐르듯 풀려나갔다고 답한다. 성공이란 게 무엇인지 고민하거나 먼 미래를 계획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내 대답에서 빠지지 않는 말은 하나님께서 늘 나와 함께하셨다는 것. 바이올린 실력이야 부단히 연습하다 보면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을 뛰어넘는 무언가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채워진다.

내가 바이올린을 켜면서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도 나의 의지에서 비롯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작은 손놀림에도 음의 변화를 보이는 악기가 신기했고, 바이올린은 늘 나와 붙어 다니는 친구와도 같았다. 바이올린과 내가 대화하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강 선생님은 종종 재활원 제자들을 댁으로 불러 처음 보는 반찬이 차려진 식사를 하도록 해주셨다. 선물은커녕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드린 게 늘 마음에 걸렸던 나는 이후 강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선생님은 나에게 과분한 칭찬을 해주셨다.

“1주일에 한 번씩이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 나도 즐거웠어. 그중에서도 차 교수는 눈빛이 달랐지. 저 학생은 진짜 내가 오기를 기다렸구나.”

나를 잘 봐 주신 선생님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나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던 강 선생님은 특히 나의 잘못된 연주 습관이나 운지법을 하나하나 고쳐주셨다. 격려와 칭찬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기특해라. 숙제도 안 냈는데 벌써 이 부분을 연습했구나.”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났을 때쯤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 또한 강 선생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 “콩쿠르가 있는데 인홍이가 한 번 준비해보지 않겠니.”

충남도가 개최하는 음악콩쿠르에 출전하라는 말씀이었다. 이로 인해 선생님은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자녀를 왜 내보내지 않느냐며 몇몇 학부모들이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인홍이보다 더 잘 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을 내보냈을 겁니다.”

강 선생님 덕분에 잘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콩쿠르를 주최하는 쪽에서 또 반대하고 나섰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주최 측 일부에서 내가 출전하는 것을 마뜩찮게 여겼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이 사람들 앞에 나서는 모습을 좋지 않게 여기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연주 실력하고 다리가 불편한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마시고 일단 연주를 들어보시고 평가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강 선생님이 또 방패가 돼 주셨다. 정말 죽어라 연습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아니라 심사위원과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무대가 두려웠다. 무대에서 비발디 협주곡을 어떻게 연주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내 차례’라는 진행자의 말, 철제 의자에 앉아 첫 음을 내기 위해 만든 손 모양,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잘 했다”며 환하게 웃어주신 선생님의 표정만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다. 다행히 실수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1등은 성세재활원 차인홍.”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트로피를 건네받고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보다 더 멋진 옷을 입고 값비싼 바이올린을 갖고 무대에 오른 또래 어린이들에게 주눅이 들었었는데….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