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타인이 나를 살피기 전에

입력 2013-01-27 17:34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했던 ‘헨리의 이야기’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헨리 터너는 금전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힌 잘 나가는 변호사다. 그는 자신이 가진 실력과 술수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야마는 사람이므로 미국의 최상류층과 거래를 하면서 부와 명성을 한 몸에 다 가지고 호화로운 삶을 살게 된다. 니코틴 중독자였던 그가 담배 가게를 들렀을 때 그의 예기치 않은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만 권총 강도를 만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그 와중에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만다.

그는 눈물겨운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회복을 위한 자기와의 싸움에 들어간다. 옛날 동료를 찾아다니면서, 그리고 예전에 자기가 맡은 사건들의 기록을 뒤지면서 그는 다시금 그 옛날 미국 최고의 변호사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런데 바로 그 과정에서 그는 일생일대의 중대한 발견과 고민을 한다. 바로 자기라는 인물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걸어온 자취를 다시 밟으면서 그는 점점 자기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온갖 더러운 술수와 모략으로 뒤범벅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헨리 터너는 결국 그 옛날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기 때문에 억울한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용서를 빈다. “나는 비열한 인간이었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를 본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중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1월에는 유월절이 있다. 유월절이 무슨 날인가? 자기를 보는 날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유월절을 만드실 때 그 백성들이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돋보인다. 애굽의 장자를 죽이실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동적으로 죽음에서 면제되게 하지 않으셨다. 바로에게 퍼붓는 죽음의 폭격 안으로 그 백성들을 일단 포함시켰다. 그리고는 어린양의 피를 발라서 피하게 하셨다. 이전 재앙에서는 그 백성을 자동적으로 제외시키시던 하나님께서, 마지막 재앙에서는 의도적으로 포함시켜 버리신다. 왜 그럴까? 천하의 교만한 인간 바로와 이스라엘이 본질상 차이가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게 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도 사실은 구제불능의 죄인임을 보라는 것이다. 자기를 직면케 하는 것이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했다. 자기를 보지 않는 자는 하나님 백성의 자격이 없다. 요즘 청문회를 하면서 자격 검증을 하는 것을 보면 왠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나를 강제로 들여다보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다. 한 해의 첫 달을 보내기 전에 만사를 제치고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목회자의 윤리가 도마 위에 오른 시대가 되고 보니 이 생각이 더욱 절실하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