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은 건강한 사람의 특권”] 38년간 605차례, 22일마다 한번꼴 ‘헌혈왕’ 황의선씨의 생명 나눔

입력 2013-01-25 19:04


매년 1∼2월은 ‘헌혈 가뭄’이 우려되는 시기다. ‘혈액 수급의 보릿고개’로 통한다. 방학인 데다 추위와 폭설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채혈량이 줄 여지가 많다. 다행히 올해는 아직까지 혈액 보유량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며칠째 이어지는 혹한에 ‘헌혈 발길’이 끊기지 않을까 관계 기관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계절 아랑곳하지 않고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헌혈의 집을 찾는 이가 있다. 지난해 11월 국내 두 번째로 600번째 헌혈 기록을 세운 황의선(59·서울 마포동)씨다.

황씨는 지난 18일 서울 서부혈액원 헌혈의집 우장산센터에서 605번째로 팔을 걷었다. 38년간 계속해 온 ‘피 나눔’. 산술적으로 따지면 1년에 16회꼴이다. 그가 해왔던 그동안의 헌혈량을 계산하면 총 27만㏄에 달한다. 몸무게 60㎏인 성인 남성 몸속에 있는 피를 5000㏄로 볼 때 54명의 혈액량과 맞먹는다.

그의 헌혈 습관은 육군 하사관으로 시작한 직업군인 시절부터 몸에 뱄다. 황씨는 1975년 5월 서울 용산역 광장 앞 헌혈버스에서 처음 팔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당신의 헌혈이 새 생명을 구합니다. O형 급구’라는 문구가 그를 버스 안으로 이끌었다. 그 뒤로도 헌혈버스만 보면 올라탔고, 헌혈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했다. 그가 군 업무상 전국을 돌며 찾은 헌혈의 집만 50곳이 넘는다. 96년에는 국내 최다 헌혈기록(172회) 보유자로 한국기네스북에 올랐다. 황씨는 “그땐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군인으로서 당연한 본분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황씨는 모은 헌혈증으로 남몰래 선행도 했다. 350여장의 헌혈증을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증해 어린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부하와 동료의 가족이 아파서 급히 수혈이 필요할 때도 헌혈증을 내놓았다. 2001년 황씨의 선행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만큼 값진 건 없다”는 격려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황씨는 2009년 36년간 몸담았던 군생활을 접고 서울의 한 병원에서 4년째 청소 일을 해오고 있다. 하루하루 힘든 일을 하면서도 헌혈은 거르지 않는다. 혈액의 모든 성분을 헌혈하는 전혈과 혈액 가운데 일부 성분(혈장, 혈소판)만을 분리해 채혈하는 성분 헌혈을 번갈아가며 월 2회씩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헌혈을 고집하는 황씨에게 아내는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든든한 응원군이 됐다. 그는 “헌혈을 하면 건강 체크를 해주니 좋고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마음도 행복하다”며 웃었다.

황씨는 헌혈 날짜가 임박하면 고기를 안 먹는다.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피가 탁해진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술·담배도 하지 않는다. 이왕이면 수혈자에게 깨끗한 피를 주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수혈용 혈액의 경우 자급자족하고 있지만 의약품 원료로 쓰이는 혈장 성분은 외국에서 수입한다고 들었어요. 연간 300만명이 헌혈하면 수입하지 않고 혈액을 스스로 충족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헌혈은 애국하는 길이기도 해요.”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600회 이상 헌혈 기록자는 황씨와 손홍식(62·광주광역시)씨 단둘이다. 이들 외 다헌혈자는 500∼600회 2명, 400∼500회 18명, 300∼400회 72명, 200∼100회 479명, 100∼200회 4861명으로 집계됐다. 황씨보다 7개월 앞서 600회 헌혈 기록을 돌파한 손씨는 최근 혈액관리본부 ‘명예의 전당’ 웹사이트에 ‘황씨의 600회 헌혈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황씨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헌혈 정년’인 70세까지 830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기회가 되면 장기나 사후 시신, 인체조직 기증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헌혈은 건강한 사람의 특권입니다. 건강을 적립한다는 생각으로 헌혈을 계속할 겁니다.” 황씨의 아름다운 도전이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