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윤석금과 엉겅퀴
입력 2013-01-25 18:34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기업을 만들면서 고향의 옛 이름을 썼다. 웅진출판이 모태다. 고향에서 공부하는 후학을 위해 장학금도 많이 내놓았고, 사업장 주소를 아예 공주에 둔 회사도 있었다. 이 때문에 예전의 공주갑부 김갑순 자리에 윤 회장이 들어가고, 야구선수 박찬호가 다음에 꼽힐 정도다.
브리태니커 외판사원 출신인 윤 회장이 출판계에서 보여준 행보는 충청도 사람의 보수색이 없었다. 전집과 단행본 등 다양한 형태의 책을 펴내면서 순식간에 한국출판의 중심에 진입했다. 독자 취향을 마케팅으로 연결시키는 재능은 천부적인 것이었다. 야심가인 그에게 출판시장은 너무 작아 보였다.
한창 잘 나갈 때 그와 인사동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특이한 것은 문화부 기자를 만나는 자리에 ‘가을대추’가 놓여 있었다. 음료시장을 개척하던 1995년의 일이다. 그는 참석자들에게 시음을 권한 뒤 품평을 구했고, 좋은 대추를 구하기 위해 애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후 정수기에서 태양광까지 본격 기업가의 길을 걸으면서 만날 일은 없었다.
2007년 들어 충무로 극동건설 높은 빌딩에 웅진 로고가 나붙었고, 새한과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해 재계 서열 30위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런데 웬일? 지난해부터 내리막 길에 들어서 추락하더니 지금은 아예 그룹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 출판만 빼고 모두 매각될 것이라고 한다.
출판은 어떤가. 세계 어디든 종이매체는 위기다. 그가 젊은 시절 열정을 불사른 브리태니커도 온라인판만 남았다. 학습지와 전집, 단행본 등 웅진의 출판사업을 총괄하는 웅진씽크빅도 임프린트가 29개에 재작년 매출 7700억원에 이르지만 활기를 많이 잃었다. 단행본 매출 1위 자리도 빼앗겼다.
윤 회장은 최근 남산을 오르면서 ‘작은 대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말을 되뇐다고 한다. 그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브리태니커 정신이다. 브리태니커의 푸른 표지에 엉겅퀴 문양을 볼 수 있다. 책을 펴낸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정신을 새긴 것이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주인공 남녀가 손수건 속 사랑의 징표로 쓰기도 했다. 강인한 생명력과 사랑을 상징하는 엉겅퀴 잎새를 바라보며 새로운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