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크리스천, 주중 신앙생활 ‘열기’] 일터가 교회다

입력 2013-01-25 20:48


추적추적 비가 내린 지난 23일 오전 6시20분,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 커피전문점 3층은 20∼30대 직장인 100여명으로 북적였다. 이들은 10분 후 시작하는 직장인 기도모임인 ‘홀리 스타(Holy Star)’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3∼4명씩 둘러앉는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목사님을 바로 바라볼 수 있는 방향으로 다시 배치했다. 이들은 간단한 빵과 음료를 먹은 뒤 성경과 노트를 펴고 서울 온누리교회 요셉청년부 구현우 목사의 설교를 경청했다.

7시30분쯤 예배가 끝나자 대부분은 인근 직장으로 출근했지만 몇 팀은 5∼6명씩 모여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날 처음 참여한 30대의 한 직장인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직장인이 뜨겁게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회사일로 바쁘지만 계속 동참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는 크리스천들은 업무에 쫓겨 예배드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주일만 간신히 지키는 ‘선데이 크리스천’들이 영적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출근 전 ‘홀리 스타’ 같은 기도모임에 참여하는 까닭이다.

직장 내 신우회나 기도모임을 통해 평일에 짬짬이 기도하는 직장인도 많다. 25일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한직선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직장선교회 8000여곳에서 80여만명의 회원들이 기도하고 있다.

몇몇 대기업에선 본사에 연합선교회를 두고 전국 지사 선교회의 봉사활동에 참여할 것을 권면하기도 한다. 직장선교회 회원들은 회사 강당 등에 모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후 정오예배와 퇴근 후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일터·교회 이상적인 조화, 소망교도소

일터와 교회가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곳은 경기도 여주 소망교도소다. 소망교도소 김무엘 교육교화과장은 “외진 곳에 교도소가 있어서 등록된 교회에 다니기 어려운 만큼 교도소 내에서 근무시간을 피해 틈틈이 예배를 드린다”며 “진심으로 수용자들을 사랑하고 교화하기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힘을 합해 세운 소망교도소의 직원 120명 가운데 50여명은 매일 오전 8시40분 대회의실에서 예배를 드린다. 성경공부 동아리를 비롯해 10명 안팎의 다양한 기도모임도 활성화돼 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수용자들을 교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도소인 만큼 직원들의 종교활동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약을 받지 않는다.

기도로 시작, 은혜 속에 직장생활

직장선교회나 기도 소모임 등이 활성화되면서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은 개선됐다. 그러나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일하는 크리스천들의 기도제목은 여전히 ‘맘 놓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 장소가 마땅치 않고 예배 드리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일부 시선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입사 면접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열심히 일하는 게 꿈”이라고 했던 김수연(41)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국내 굴지의 통신 관련 대기업에 취직한 뒤 예배실이 따로 갖춰져 있는 본사에서 일하면서 여러 기도모임에 참여했고 직장연합선교회에서 많은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별도의 예배 장소가 없고 크리스천도 거의 없는 지사로 발령받은 뒤 신앙생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는 한 직원과 기도모임을 만들어 점심시간에 예배를 드렸지만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됐다. 외근이 잦아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데다 점심시간도 아껴 가며 일을 하는 동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씨는 매일 오전 동료들보다 20분 먼저 출근해 체력단련장에서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나 홀로 예배’를 거르지 않는다. 3년 전 시작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도와 봉사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김씨와 같은 어려움에 처한 직장인들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정모(49)씨는 2011년 본사에서 지사로 발령받은 뒤 기도모임을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일부 직원은 팀장급인 정씨의 제안을 놓고 “회사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면 위화감이 생긴다”면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쉬는 시간을 쪼개 인터넷 설교 방송을 본다는 정씨는 “그리스도인끼리 자주 만나고 하면 종교적 배경이 같아 친하다는 말이 나와서 기도를 드러내놓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반듯한 기도 생활, 직장선교에 도움

눈치를 보느라 회사에서 예배드리기 어려운 직장인들은 회사 인근 교회를 찾는다. 이들 교회에선 청년부 사역자들과 직장 크리스천들이 손잡고 대형 집회를 열거나 장애인, 새터민, 쪽방 어린이들을 돕는 봉사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회사가 몰려 있는 서울의 종로·서초·강남·마포·중구에서 직장인을 위한 정오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16곳이다.

회사 근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직장인들의 바람은 회사 안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동역자를 만나는 것. 또 교회 일 하느라 업무를 등한시한다는 오해를 사는 것도 큰 고민이다.

조모(35)씨는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을 회사에서 달가워하지 않고 업무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라 좀 일찍 출근해 짧게 기도를 드린다”며 “바빠서 기도를 자주 못하지만 다들 바쁘니까 전도를 하기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IMF사태 이후 실적 위주의 기업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자투리 시간까지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천라이프센터 신산철 사무총장은 “그리스도인은 삶 자체가 기도하는 것인 만큼 어느 곳에 있더라도 그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반듯한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레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직장선교를 하라”고 제안했다.

한직선연 초대 회장인 박흥일 장로는 “30여년 전만 하더라도 직장선교회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모임을 만들기도 부담스러워 창고나 옥상에서 예배를 드렸다”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치열하게 예배드렸는데 이제는 직장기도 모임이야 많아졌지만 열정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